伏地不動.무사안일 풍조탓-소대장 길들이기 왜 일어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장교 탈영(脫營)사건 당시 장교들이 진술했던 하극상(下剋上)사태가 6일 육군의 자체 수사결과 발표에서 사실로 드러나 다시한번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른바 사병들에 의한「소대장 길들이기」가 병영안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음이 밝혀져 지휘체계및 군기(軍紀)에 심대한 문제점이 있음을 노출시킨 것이다.
특히 군당국은 관련자 29명 구속등 사건처리 과정에서 군내 문제점 표출을 겁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한 인상마저 풍겨 군 개혁의 장애로 지적됐다.
당초 육군은 장교 무장탈영이 단순한 장교 자질문제로 치부하려했으나 육군 합동조사단의 발표와 군관계자들의 평을 들어보면 이번 사건은 군의 지휘체계 문란,무사안일(無事安逸)과 복지부동(伏地不動),교육및 부대운영상 문제점등 근원적 문 제들이 복합돼있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부대장의 보신위주 지휘방침과 후방 독립부대에 만연해있는기강해이가 맞아 떨어져 초급장교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신임 소위는 임관과 6개월간의 훈련을 받으면서 사기가 높아진다.그러나 이들의 사기는 현장 부대에 배치되면서 모순을 경험하게 된다.평소 느슨하게 풀려있는 고참병들은 신임소대장의 기를 꺾기 위한 행동을 하게된다.이같은 실정은 전방보다 는 후방이 심각하다.
육군의 한 중령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초급장교들이 후방 근무를 꺼린다고 말한다.특히 소수의 고참병과 다수의 방위병이 독립적으로 소대를 구성하는 해안부대같은 경우 더 심각하다고 한다.
또 사회가 민주화되고 물질문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자란 X세대들이 사병과 장교로 들어오는데 군은 아직도 지난 60,70년대의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교육은 사회변화에 따라 개선돼야 함에도 교육방식을 책임지는 중간 간 부들의 사고방식이 뒤처졌기 때문에 건군 초유의 장교 무장탈영 사건이 발생된 것이다.
지휘책임이 53사단 전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장 이하에 대한 축소처분만 발표한 육군의 태도로 보아 군의 개혁이 이루어지다 그친 감을 갖게한다.
사병이 아닌 장교 탈영사건이 발생했으면 곧바로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그런데 사건을 접수한 중대장은 53사단 영창에 송치하고 하극상을 주도한 申모병장등 23명은 훈방처리에 그친 것이다.사단 영창 에 송치되려면 대대장→연대장→사단장을 통해 당연히 보고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내가 있는 동안은 아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식의보신주의로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군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하는 지휘체계가 이런 식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군의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과거 정치.경제.군사등 모든 권한을 행사해온 군의 굽은 등뼈가 펴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군의 위치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나 사회 각층의시도를 그저 홀대와 아픔으로만 받아들여 복지부동 하는 분위기가더 팽배해져 있다는 지적이다.
군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철저한 자기반성과 내부쇄신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