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광장>그룹 동물원 리더 김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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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창완이 형,앙코르곡은「꼬마야」나「안녕」어때요?』 『광석이 노래로 하자.「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같은 거.』 『범용이 형,코드 알죠?』 만성정신질환자 재활의 집 기금마련을 위한「젊은 의사와 젊은 가수의 콘서트」가 열린 지난 달 24일 오후 서울 종로5가 연강홀.
경기도 광주 연세대 정신병원에서 달려온 의사 김창기(金昌起.
32)씨는 무대 뒤에서 어느새 그룹 동물원의 가수 김창기로 변해 있었다.와이셔츠에 단정한 넥타이 차림의 그는 흰 가운만 걸치면 금방이라도『어디가 불편하시죠』하고 물을 듯한 인상이다.
『살이 좀 쪘죠?』수줍게 웃는 김창기씨는 가수로 조명받는 것이 오랜만인 탓인지 약간 초조해 보였다.
다른 가수들이 사정에 따라 교체 출연하는 가운데도 김씨가「노래그림」과 조태선씨등 후배가수들과 함께 5회공연에 내리 출연하는 것은 그가 정신과 레지던트라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만성정신질환자는 우리나라 인구의 1%로 추산됩니다.이들을 기도원이나 정신병원에 격리하는 대신 사회에 적응,함께 살아 갈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지요.』 함께 무대에 선 이범용씨(34)는 듀엣곡『꿈의 대화』로 MBC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장본인.김씨보다 연세대의대 3년 선배인 이씨는 이제 어엿한 정신과개업의다.「창완이 형」은 물론 가수 김창완.『동물원』의 첫 앨범을 기획,녹음해 준 인연이 있다.
김창기씨와 가요계의 인연은 의대 본과 1학년 때 가수 임지훈에게 곡을 주면서 시작됐다.친구 다섯이 모여 틈틈이 만든 노래를『동물원』첫 앨범으로 발표한 것은 김씨가 본과 4학년이던 88년.대학 시절 그의 성적이 어땠을 지 짐작이 간 다.다행히도그가 택한 정신과는 다양한 세상경험을 의사의 자산으로 인정하는분위기다.
『제 병도 고치고,남의 병도 고치는 거라고 생각해요.』김씨는자신에게 우울한 기질이 있다고 말한다.그래서인지「어릴 적 뛰놀던 골목길」,「고교 때 비틀즈를 듣던 라디오」같은 따뜻한 추억을 회상하면서도「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 는 지」하고 한 마디 덧붙인다.그는 또『동물원』노래의 감상적 분위기를『설익은 지식인의 자아도취였다』며『아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그걸 도약의 길로 삼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지난해 봄 발표한 5집 앨범이후 아직 새 노래가 없다.『동물원』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탓이다.가수 김광석을 제외하고는 여느 사람들처럼 유준열씨(31)는 무역회사에서,박경환씨(31)는 연구소에서,박기영씨(29)는 고시준 비로 바쁘게살고 있다.
『이전처럼 노래 욕심이 그리 많진 않아요.』 굳이 다른 데서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지금의 직업이 창조적이라는 설명이다.
글 :李后男기자 사진:安聖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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