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 나간 장수 말에서 끌어내리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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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강원도선대위 대회에 참석한 정동영 후보. [뉴시스]

"전쟁터에 나간 장수를 말에서 끌어내리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번 선거에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

14일 오전 대통합민주신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선대위원장.고문단 연석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에 나선 정동영 후보가 굳은 표정으로 던진 말이다.

이날 당 지도부 회의는 민주당과 50 대 50 지분으로 합당하기로 한 정 후보의 결정에 당내 반발이 거세자 타개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소집된 것이었다. 경선 때 경쟁자였던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후보 단일화 의지는 존중하지만 결과는 잘못됐다"고 정 후보를 비판했다. 이어 "의원들의 사기에 문제가 생긴다"(손학규), "후보와 대표가 재협상하라"(김근태)는 등 당내 유력 인사들로부터 정 후보에 대한 압박이 쏟아졌다.

3시간가량 계속된 회의에서 듣고만 있던 정 후보는 말미에 "이번 대선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내년 총선이나 당권에 티끌만 한 관심도 없다. (내 의도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후보 단일화 결정을 추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간절한 호소가 먹혔던 걸까.

결국 신당은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한 4자(정동영-이인제-오충일-박상천)회동 결과를 존중한다는 대원칙 아래 통합 조건에 대한 추가 협상을 벌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 후보의 입장과 당내 반발을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이다.

정동영 후보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마(魔)의 지지율 20%를 한 번도 넘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정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후보 지지율이 정체 상태이다 보니 대선 이후 총선과 당내 상황을 걱정하는 인사들이 민주당과의 지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한때 후보 재신임을 묻는 방안까지 검토했었다"고 고민을 전했다.

정 후보의 근본적인 고민은 전략적 구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범여권의 승리 방정식인 '호남+충청'벨트 형성은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벽에 부닥쳤다.

13일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의 충청권 지지율은 이명박(27.2%), 이회창(23.6%) 후보에게 한참 뒤진 13.1%에 그쳤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20 대 80'의 계층 대결구도를 들고 나왔지만 기대를 걸고 있는 저소득층에서도 두 이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삼성 떡값 의혹'을 발판으로 한 '부패 대 반부패' 를 대선 전선으로 삼겠다는 전략도 사정이 비슷하다. '신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의 연대 수준이 낮아 큰 파괴력은 발휘하기 어렵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정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는 구심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노.호남.수도권.시민단체 출신 등으로 복잡다단한 당내 계파의 원심력이 강해져 자중지란으로 선거운동 한번 제대로 못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당내에 퍼지고 있다. 심지어 신당 일각에선 "지지율이 10%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후보 교체까지 검토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고건 후보 추대론'이 떠도는 배경이다.

이 같은 악조건을 돌파하기 위한 정 후보의 승부수는 '인물 연합'이 될 공산이 크다. 정 후보 측은 다음 주까지 민주당과 합당.후보 단일화를 마무리 짓고 문국현 후보와 2단계 단일화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명지대 김형준(정외과) 교수는 "현 구도에서 정 후보가 단번에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이회창 후보를 따라잡고 양강 구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문국현 후보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수도권 젊은 층에 큰 반감을 사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자녀 위장 취업'문제와 조만간 있을 김경준씨의 귀국을 계기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대대적인 도덕성 공세를 벌여 반전의 기회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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