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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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자와 남는 자(25) 저쪽이다.길남은발소리를 죽이며 방파제 밑을 걸었다.저쪽이 그래도 경비원들을 피하기가 제일 쉬운데다 육지까지도 가깝다.
간만의 차가 있겠지만 차라리 물이 빠졌을 때가 더 쉬울 거다. 마른 풀을 헤쳐가면서 길남은 어디로부터 뛰어내려야 할지를 가늠해 본다.경비원이 이쪽까지 왔다가 돌아서는 시간과 다시 나타나는 그 사이여야 할 거다.그렇다면 경비원이 두 번 왔다 가야 한다.왔다가 돌아갈 때 방파제를 넘어야 하고,다 음 단계로다시 그가 돌고 돌아갈 때 물로 들어서야 한다.
옷은 어쩐다? 명국이 아저씨는 그랬다.옷은 혁대로 감아서 머리에 이고 가야 한다고.그러나 바다를 건너자면 아무리 머리위에동여맨다 해도 젖기는 마찬가지다.아직은 춥다.젖은 옷을 입고 산으로 튀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다.
그렇지만 이제와 그것을 문제 삼을 건 없다.
마른 풀숲에 몸을 숨기고 길남은 경비원이 왔다가 돌아가는 시간을 재본다.저 정도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 아닐까.
화순이가 문제겠지,그애가 걸리적거렸다 하면,길남은 이를 악물며 방파제 위를 오가고 있는 경비원을 노려보았다.
그땐 찔러죽이는 수 밖에 없는데 칼이 없다.만약을 위해서라도뭔가를 만들어야 할 거다.그런데 날짜로 잡은 그믐까지 그게 가능하냐도 문제다.
그래,알았으니까.
일단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하자.
시간을 알아 놓는 게 제일 중요했으니까.
마른 풀 속으로 몸을 숨기면서 길남은 방파제 위를 바라본다.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그것은 그날의 운이라고 하자.
풀 속을 기다시피하며 길남은 숙사로 돌아왔다.
더듬거리며 자리를 찾아 누워 길남은 눈을 감은채 아무 생각도않으려고 애썼다.무엇이 어떻게 되든 이제 일은 시작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옆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길남은 미동도 없이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세 사람 건너에 서 누군가 윗몸을 일으켰다.
『길남아.』 저게 누구더라.태성이다.저놈이 왜 날 부르는 건가.내가 나갔다 오는 걸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길남은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 날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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