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北核 해결의길-美.北 기존약속 재확인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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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3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미국간 제3단계 고위급 2차회담이 양측간에 별다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일시 중단 상태에 있다.
북한은 물론 미국도 현재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아이티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복권 문제에,북한은 김정일(金正日)의 주석직 취임 문제에 각각 사로잡혀 있다. 양측이 핵협상에서 진정으로 진전을 이뤄나갈 생각이 있다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에 촛점을 맞추어나갈 필요가 있다.그러나 현재 양측 모두가 외교적 해결 방법에서 빗나가는 길만 찾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한국군과 팀 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논의하고 있고 북한은 영변 원자로의 핵연료봉 재장전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도록 유도하는 유일한 길은 미국이북한에 대해 했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이다.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하면서도 對북한 군사동맹을 재확인하고 있다.
미국은 뒤늦게 또 하나의 교훈을 배우고 있다.
지난주 로널드 라토퍼 美태평양함대사령관은 美항공모함의 한반도해역 진출을 아이티 사태에 비유해『강력한 군사력은 외교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머칠후 북한의 인민무력부는 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북한내 군사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결코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런 것은 북한의 제네바회담 대표는 인민무력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정부는 북한의 협상논리를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핵개발을 동결할 의사는 있으나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보장과 보상이 있기 전까지는 어떠한 핵개발 계획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미신고 2개시설에 대한 IAEA의 특별사찰이다. 미국이 특별사찰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옳은 정책이다.
북한은 현재 냉각수조에 보관중인 폐연료봉을 꺼내는 것을 꺼리고 있고 나아가 핵연료봉의 부식을 막기 위해 건식 보관방식으로전환할 용의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또 건설중인 흑연감속 원자로의 건설을 중단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기존 핵 폐기물 재처리 시설을 봉인할 의사도 갖고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개선하고 상대적으로 핵무기제작 가능성이 적은 경수로 건설을 지원,북한의 흑연감속로를 대체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또 북한의 당면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간에 마구잡이 식의 위협을 중지하고 서로 기존 약속을 재확인하는 행동이 빨리 이루어지면 질수록 서로가 합의에 도달하는 방법도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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