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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맨발의 투혼’ 박세리 마침내 ‘골프 명예의 전당’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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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세리(30·CJ)의 흰 발을 기억하는가.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공을 쳐낸 끝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그 장면 말이다. 1998년 외환위기의 어려웠던 시절, 박세리는 전 국민의 희망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박세리는 이제 한국 골프의 대명사이자 세계 여자골프의 큰 봉우리로 우뚝 섰다.

박세리가 13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오거스틴의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서 입회식을 했다. 미국 진출 10년 만에 골프 명예의 전당에 정식으로 입성한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이제야 드디어 꿈을 이뤘습니다.”

 감색 양복을 입은 박세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3000여 명의 축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낸시 로페즈(미국)의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오른 그는 환하게 웃으며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된 소감을 밝혔다.

“모든 사람이 저에게 한국 여자골프의 선구자라고 말했다. 선구자가 된다는 것은 어렵고 외롭다. 압박감도 여간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온다고 생각하면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고, 이게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97년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수석으로 합격한 박세리는 이듬해 미국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98년 5월 18일, 메이저 대회인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우승이 신호탄이었다. 같은해 7월 8일 끝난 US여자오픈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4라운드 18번 홀에서 물에 빠질 뻔한 공을 극적으로 살려내 연장전으로 몰고간 끝에 우승하며 ‘세리 팩(Se Ri Pak)’이란 이름을 전 세계 골프팬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박세리는 그해 메이저대회 2연승을 포함해 4승을 거뒀다. 그의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꿈나무 골퍼들이 지금 국내외에서 무서운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88년생 신지애·김하늘·민나온 등이 모두 ‘박세리 키드’다.

박세리는 올해까지 메이저 5승을 포함, 통산 24승을 거뒀다. 슬럼프를 딛고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에서 우승하며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를 채웠지만 LPGA투어에서 10년 이상 활동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이제야 명예의 전당에 정식으로 발을 디디게 됐다.

현재 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은 모두 120명. 이 가운데 LPGA투어 선수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카리 웹(호주), 박세리 등 24명에 불과하다. 98년 LPGA투어 커미셔너를 지낸 짐 리츠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박세리를 처음 봤을 때 어니 엘스를 떠올렸다. 어떤 운동을 해도 정상급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박세리에게 축전을 보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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