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회창 지지기반 바꿔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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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오르고 이회창 후보는 빠질 것"이라고 했다. 이회창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12일 발언("이회창 후보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이 대선 후보 지지율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적어도 전국 판세로는 그런 전망이 빗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오차 범위 내에서의 미세한 차이를 나타냈을 뿐이다.

하지만 권역별로 들여다보면 상당한 지지기반 바꿔치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 이명박.이회창 후보는 7일 조사 때 나란히 30%대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13일 조사에선 50% 대 20% 차이로 확 벌어졌다. 부산.경남에서도 이명박.이회창 후보의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이회창 후보는 이 같은 영남 지역에서의 손실을 호남과 충청권에서 벌충했다. 호남에서는 이명박 후보 지지율을 한 자릿수로 밀어내고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샘플 수가 적어 크게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지만 강원.제주에서 이회창 후보는 1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후보의 강세 지역인 서울에서도 격차를 좁혔다. 일종의 대마 바꿔치기가 이뤄진 셈이다. 이 같은 결과는 BBK 변수와 함께 올 대선에서 이회창 변수가 계속 유효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초 전문가들은 이회창 후보 지지율 하락 폭에 대해 최소 2~3%포인트에서 최대 6%포인트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20%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고정 지지층이 있다는 증거"라는 이회창 후보 측근의 주장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명박 후보와 박 전 대표는 '보완재'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지층의 지역.연령.이념 측면에서 두 사람이 함께하면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관계다. 이 후보는 수도권과 젊은 층, 중도보수에서 강세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영남권과 50대 이상, 보수층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이회창 후보와 박 전 대표는 '대체재' 성격이다. 이 후보 지지 기반이 박 전 대표와 겹치기 때문에 서로 대체될 수 있고 경쟁하는 관계라는 뜻이다. 현재 양상은 이명박-박근혜 '보완재 연합'이 위력을 발휘하고 이회창 후보는 생존을 도모하는 불안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로 미루어 볼 때 박 전 대표의 선택은 앞으로도 계속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 전 대표는 BBK 변수에 따른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변화 추이를 지켜볼 것 같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BBK 변수를 극복하고 박 전 대표의 보다 명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면 영남권에서 이회창 후보와의 격차를 벌려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이명박 후보가 BBK 변수로 지지율이 흔들리고 박 전 대표에게서 분명하고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이회창 후보는 다시 영남권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이회창 대결 구도를 위협할 만한 범여권 단일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없을 경우 이 같은 보수 후보 간의 접전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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