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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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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또 부담스럽다.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의 진실 공방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럼 쓰는 입장에서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 같다. 욕을 먹어도 할 얘긴 해야겠다.

나는 삼성을 볼 때마다 의아한 느낌을 받는다. 안팎의 불균형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워싱턴 특파원 때 휴일날 골프장에 갔다가 혼자 나온 30대 미국인과 한 팀이 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대뜸 ‘오, 샘썽(Samsung)’이라고 했다. 전자 제품 판매업자인 그는 한국 하면 삼성이 떠오른다고 했다. 골프 치는 내내 그는 삼성을 칭찬했고, 괜히 내가 기분이 우쭐했었다.

외국에서 살아본 분들은 이런 경험 한두 번은 했을 것이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처음 가면 그 휘황찬란함에 기죽기 십상이다. 하지만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다 가슴 찡해지는 순간이 있다. 전 세계 최고 기업들의 광고 전광판들 사이로 삼성과 LG 광고판이 떡하니 서 있는 걸 볼 때다.

밖에 나가면 삼성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칭송 받는다. 질투와 시기를 받지만 아무도 무시하진 못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내에 오면 삼성의 이미지는 영 달라진다. ‘어떤 천재도 자기 동네에선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다. ‘삼성 두들겨 패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누구보다 삼성이 원망스럽다.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에서다. 왜 밖에 나가면 세계가 부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초일류 기업이 국내에선 처신이 이런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에 대해 삼성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중 여론은 “전혀 없는 얘기 했겠어?” 하는 것이다. 이런 평판은 삼성 스스로 만들었다.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본다. 검사들한테 진짜로 명절 때 떡값을 보냈는지, 그게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모르지만 명백하게 다 밝혀졌으면 한다. 그게 사실이 아니면 삼성은 누명을 벗는 것이다. 사실이면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망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선 삼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를 정의감에 가득 찬 의인으로 묘사한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변호사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하면서 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그럴 각오라면 왜 직접 나서지 않고 천주교 사제들을 앞세워 찔끔찔끔 기자회견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 매체, 저 매체와 시차를 두고 인터뷰하고, 조금씩 의혹을 증폭시키는 양태가 잘 계산된 언론 플레이 같은 느낌을 준다. 임채진 검찰총장의 청문회 하루 전날 그를 떡값검사로 지목한 대목에 이르면 그 절묘함에 놀라게 된다. 혹시 지금 정치게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가운데 이른바 진보 진영 후보들은 이번 선거를 ‘부패 대 반부패’의 싸움으로 몰고 갈 태세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측은 선거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정의로운 진보 대 수구 꼴통’의 싸움으로 몰아가 승리했다. 과거엔 ‘지역감정 자극하기’가 중요한 선거 전략이었다. 이젠 ‘증오감 불어넣기’가 그 자리를 대체한 건지도 모르겠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으로부터 몇 년간 받은 돈은 1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입맛 쓰다. 세간에는 “삼성 참 돈 많구나”하는 비아냥이 나돌고 있다. 게다가 김 변호사는 삼성에서 일했던 게 매우 부끄러운 것 같다. 그럼 그 떳떳지 않다는 100억원부터 사회에 환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받을 건 다 받고, 돈 더 안 주니 폭로하는 게 아니냐는 또 다른 비아냥도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사제단은 떡값검사들에 대한 물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걸 다 공개해 달라. 더 이상 국민을 질질 끌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삼성 말인데, 부디 밖에서 받는 존경의 절반만이라도 안에서도 받을 수 있게 처신해 달라.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