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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러시아의 새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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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나간 과거는 전지전능한 신(神)도 바꿔놓을 수가 없다.오직 역사가만이 바꿀 수 있다』고 영국(英國)의 작가 새뮤얼 버틀러는 변죽을 울렸다.
70여년간 세계의 반쪽을 지배해온 소련공산주의가 러시아의 역사에서 설 땅을 잃었다.
가을학기를 맞아 러시아 교육부가 내놓은 새 교과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의식혁명」이다.
가장 큰 관심은 역시 9학년(중3)의 러시아 역사 교과서다.
「위대한 사회주의혁명」으로 찬미돼온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은「한 사회주의 집단의 쿠데타」로 고쳐 정의됐다.
『페트로그라드및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무장봉기의 승리였다.대의적(代議的)민주주의가 결여된 당시 러시아의 상황이 가능케 해준한 사회주의자의 쿠데타였다.이 정권은 인민들을 한낱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전체주의적 체제로 발전됐다』는 서술이다.
「위대한 혁명의 아버지 레닌」은 악당으로 매도되지는 않았지만그에 대한 거창한 수식어는 모두 사라졌다.모든 악(惡)은 스탈린 몫이었다.스탈린 치하(治下)는 「원천적 무법시대」였으며 온갖 날조된 재판으로 정적(政敵)을 처형하고 유배시 킨 악한(惡漢)으로 그는 묘사됐다.
시민권과 표현의 자유,기업이념이란 용어들이「위대한 아버지」와「계급투쟁」을 대신하고 각급 학년에「시장경제」과정이 생겨났다.
상급학년에 「경영심리」「환경」과목도 등장했다.
진행중인 교육혁신은 교육기법이나 방식만이 아니고 새 교과서를통해 러시아인의 심성(心性)을 바꾸는 일이라고 한다.종래 학생들은 국민학교 첫 학년때부터「개인」을 억누르는 교육을 받아왔다.『나는 그 무엇도 아니며 나의 것도 아니다.오 로지 인민(narod)일 따름』이라는「인민학습」이었다.
지금부터는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훈련이 교육의 목표며「최종적으로 단정해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사립학교의 등장과 함께 독자적인 교재개발도 권장받는 분위기다.
51권짜리 소비에트 백과사전도 개편에 들어갔다.가위「문화혁명」이다. 레닌은『자유는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배급을 줄 수밖에없다. 자유가 팽배한 곳에 국가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팽배해지는 자유가 레닌의 그「국가」를 묻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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