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교실로 간 매니페스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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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인 나는 1학기 초 학생들과 서약식을 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최한 '교실을 바꾸는 작은 약속들-사제동행 매니페스토'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 약속을 보다 구체화해 공약으로 발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다짐으로 교사와 학생이 서약을 맺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우선 나부터 '모든 학생에게 편지 쓰기' 등 5대 공약을 발표했다. 학생들도 투표를 통해 '급식 시간에 반 전체 인원과 대화하기' 같은 '우리 반 공동공약'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각자 가정생활이나 성적 등과 관련한 구체적 공약을 정했다. 공약을 서로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공약을 서로 알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서다. 그리고 공약을 적은 종이를 학 모양으로 접어 각자 지장을 찍은 뒤 교탁 위 약속함에 넣었다. 평가는 자기 점검표를 만들어 매달 말일 상.중.하를 매기는 식으로 했다.

한 학생은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쑥스러워 그 말을 못하다가 어버이날을 핑계 삼아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해요." 몇 마디 문자에 그 학생의 어머니는 감동해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한다.

약속 지키기의 가장 큰 성과는 교사와 제자가 함께 친밀한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매니페스토는 '~해라' 또는 '~하지 마라'는 명령과 금지의 교육이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정한 뒤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자기 주도 학습인 셈이다. 교사는 이 과정에서 학생의 감시자가 아닌 동반자 역할을 하게 된다.

조경희 (김포 통진고 교사.미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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