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아파트 분양가 공개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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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건설업체들이 과연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시민단체들은 최근 몇년간의 집값 폭등이 분양가 자율화 탓이라며 민영 아파트의 원가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들여다보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은 원가 공개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력히 맞서고 있다. 정부는 1999년부터 시행한 분양가 자율화의 대원칙을 유지하겠다며 건설업체들 쪽에 섰다.

전문가들은 "분양원가 공개가 과연 주택가격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조치인지, 자칫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역효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논란의 시발=지난 4일 서울시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도시개발공사가 분양한 아파트 원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분양가가 공개되자마자 건설업체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도개공이 평당 1천2백10만원에 분양한 상암지구 40평형 아파트(전용면적 32평)의 원가는 평당 7백36만원으로 발표됐다. 분양가에서 원가(토지매입비와 건축비 등)를 빼면 약 40%의 이윤을 남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은 성명에서 "공기업이 이 정도라면 민간업체의 분양가는 더 부풀려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주택공사는 "분양가 공개는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주택협회도 "시장원리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원가 공개에 반대했다.

◇계속되는 논란=전국의 집값이 2001년 이후 3년간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내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지자 시민단체들은 건설업체 책임론을 제기했다.

경실련과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은 "정부가 분양가를 완전 자율화하는 바람에 건설업체들이 분양가를 올렸고, 기존 주택의 가격이 덩달아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건설업체들이 폭리를 취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주택가격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택 건설업체들은 "높은 분양가가 기존 아파트 값을 올린 게 아니라 기존 주택의 시세가 급등하다 보니 아파트를 지을 땅 값과 주택 자재 가격이 올라 분양가도 상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분양가 자율화 이후에 아파트의 품질이 크게 좋아졌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향상됐다"며 분양가 인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결국 양측의 논리와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민하는 정부=주무 부서인 건설교통부는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 불거지는 게 부담스럽다.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폭리 주장이 제기될 것이고, 결국 분양가를 정부가 다시 규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란 우려에서다. 건교부 고위 관계자는 "분양가 자율화가 어렵사리 자리잡았고 집값도 지난해 '10.29 대책'이후 하향 안정되는 추세인데 굳이 분양원가를 공개해 평지풍파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의무화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건교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분양원가를 강제로 공개토록 하는 사례는 없다고 말한다.

건교부는 시민단체의 주장대로라면 오히려 집값을 상승시켜 서민들의 내집 마련이 더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분양가 공개→주택 공급량 감소→집값 상승의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아파트에는 철근.모래에서부터 벽지.마감재에 이르기까지 수천 가지 자재가 들어가는 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원가 산정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업체가 제시하는 분양원가를 누가 검증할 것인지도 문제다.

건교부는 분양가를 통제하면 오히려 투기세력이 시세차익을 독식할 것이란 주장이다. 차라리 시장 자율에 맡겨 시세차익을 주택업체가 이윤으로 남기면 주택을 더 많이 지을 여력이 생기고, 이익의 일정 부분은 세금으로 회수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고철 주택산업연구원장은 "소모적인 분양가 공개 논란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주택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원가 공개보다는 분양가 관련자료를 자율적으로 공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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