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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수난곡' 진한 울림 느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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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3년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 합창대장(칸토르)에 부임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렸다. 매주 일요일 예배에서 합창을 지휘하면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은 물론 합창대원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라틴어와 음악을 가르쳤다. 교회 오르간 수리도 그의 몫이었다. 부활절.성탄절 등 교회 절기뿐만 아니라 예배 때마다 초연한 칸타타만 해도 3백곡이 넘는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b단조 미사''마태 수난곡''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골드베르크 변주곡''평균율 제2권'등 음악사에 빛나는 명곡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물론 성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초연을 도맡았던 작품들이다.

서양음악사에서 라이프치히는 바흐의 성지(聖地)로 끝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태어났고 멘델스존과 슈만이 음악에 혼신의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멘델스존은 먼지 쌓인 서고에서 잠자고 있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끄집어내 불후의 명작으로 격상시킨 공로자다. 오늘날 바흐가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것도 멘델스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흐가 남긴 악보를 전곡(全曲) 출판한 바흐협회가 창설한 것도, 1999년부터 바흐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라이프치히 시민들이었다.

음악도시 라이프치히의 최대 자랑거리는 냉전시대 동유럽 최고의 악단으로 각광받았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당시 라이프치히의 '음악 시장'으로 있었던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것만 봐도 이 악단의 문화적 위상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가 옛 동독 시절 '문화 수도'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회원에 가입한 시민들은 1만2천명이 넘는다.

1781년 창단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자체 심포니 공연 외에도 오페라(라이프치히 오퍼)와 합창(성토마스 교회) 반주로 1인 3역을 해낸다. 복잡한 순환 근무 시스템을 도입해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세 장소에서 동시에 공연이 열릴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토마스 교회에서 열리는 바흐 합창음악 공연은 매주 세 차례나 개최된다. 1212년 12명의 소년으로 결성된 성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합창단이다. 1216년 창단된 드레스덴 십자가합창단은 물론 1498년 첫 화음을 빚어낸 빈 소년 합창단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어디 그뿐인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도 모자라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도 이곳에서 활동 중이다. 멘델스존과 슈만이 창설한 라이프치히 음악원, 세계적 음악 출판사인 브라이코프 운트 헤르텔도 라이프치히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일찌감치 상인.교수.학생 등 중산층 출신 음악 애호가들이 일궈낸 음악도시의 인프라들이다.

성토마스 교회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오는 3월 16~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재개관 페스티벌에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전곡을 연주한다. 바흐가 44세 되던 해인 1729년 4월 15일 성금요일에 성토마스 교회에서 초연한 곡으로 3시간이 걸리는 대작이다. 92년 바흐의 후계자로 제16대 칸토르에 취임한 지휘자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49)도 성토마스 교회 합창단 출신이다. 02-599-574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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