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보관 헐뜯는 사람 정말 부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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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8일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이회창 출마 선언' 이튿날인 8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머릿속은 '이회창 해법 찾기'로 가득한 듯했다.

이 후보는 평소처럼 오전 5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회창 출마로 인한 보수진영 분열, 이재오 최고위원 사퇴 이후 공백, 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 구하기 등등…. 그의 하루는 숙제로 뒤덮였다.

이른 새벽 그는 자택에서 이방호 사무총장을 전화로 찾았다. 이 총장은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략홍보조정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이 후보는 "이회창 변수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라. 며칠간 일정을 비워라. 지금까진 신당 정동영 후보만 염두에 뒀지만, 앞으로 일정은 이회창 후보를 감안해 조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전 8시30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총장은 "당이 위기 상황이고, 후보의 모든 일정을 전면 조정해야 한다"고 이 후보의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9일로 예정된 경남 필승결의대회와 부산 지역 언론 인터뷰는 즉각 취소됐다.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등 경제 자문단과의 조찬이 예정됐지만 이 후보는 조찬 대신 시내 모처에서 측근 의원들과 회의를 했다. 그가 개인사무실 안국포럼에 나타난 것은 오전 9시15분쯤. 이 후보는 집무실에서 임태희 비서실장과 권택기 스케줄 팀장 등을 불러 향후 일정을 논의했다.

사무실을 나서는 그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언제 만나나.

"아직 계획이 없다."

오후 5시.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이명박 후보의 발언은 재향군인회 초청 특강에서 두드러졌다. 이날 유일한 공식 일정인 특강에서 이명박 후보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다 숨진 장병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했다. 또 북핵 폐기 전 대북 경제협력을 골자로 지난 7월 한나라당이 발표한 '한반도 평화비전'에 대해 "한나라당 공식 당론이 아니며, 내 대북정책과 차이가 있다. 나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보수색을 보였다.

전날 이회창 후보가 출마선언에서 "대북관이 모호하다. 국가 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철학이 없다"고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 그와 '보수표 쟁탈전'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원고를 만들기 위해 오후 1시부터 3시간이 넘도록 자신의 통일외교 자문교수들과 머리를 맞댔다. 고려대 남성욱.현인택 교수, 성균관대 김태효 교수, 경기대 남주홍 교수 등 자문교수들이 총출동했다. 이명박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내 안보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고 헐뜯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정말로 부적절한 언사"라며 "세상에 나라를 지키는 데 중도가 어디 있고, 울트라 보수가 어디 있느냐"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강연을 마친 이 후보에게 기자들이 또 물었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퇴했는데.

"화합의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박 전 대표 측에선 '아직 부족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 소리는 좀 하지 마라." 이 후보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서승욱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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