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눈먼 연구비' 사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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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세대 교수들이 국가예산으로 지원된 연구비 일부를 개인적으로 쓰다 적발됐다. 허위 영수증을 첨부하거나 영수증 금액을 부풀리는가 하면 연구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것처럼 꾸미는 등 각종 변칙이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9일 연세대 3개 학과 교수 5명과 박사급 연구원 5명이 7개 연구과제 연구비 11억9천7백60만원의 10.5%(1억2천5백58만여원)를 연구 목적 외에 개인 용도 등으로 쓴 사실을 확인하고, 전액 환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B교수는 2개 과제 연구비로 6억5천4백50만원을 지원받아 허위 영수증을 첨부하는 방식으로 6천1백46만여원을 목적대로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교수들도 박사급 연구원에게 인건비를 준 다음 다시 일부를 돌려받거나 아예 주지 않는 수법으로 공동경비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회의비나 학술대회 비용으로 쓴 영수증을 제출했으나 금액을 부풀린 사실도 밝혀졌다.

재단 측은 개인적으로 사용한 돈의 용처를 추궁했으나 교수들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 관계자는 "계좌 추적권이 없어 교수 개인 통장에 입금된 금액의 집행 내역은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이 대학의 시간강사가 "연구 과제 심사가 잘못됐다"고 인터넷을 통해 고발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의 교수들은 전체 연구비가 재단으로부터 학교 측에 입금되자 우선 4천9백69만여원을 간접경비 명목으로 떼냈다. 대학 부설 연구원의 인건비 등 공동경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또 이들은 4천8백23만여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며, 나머지 2천여만원은 연구원의 공동기금으로 보유하다 적발됐다.

연구비를 간접경비 명목으로 떼거나 연구목적 외로 사용(私用)하는 것은 재단 관계법상 금지돼 있다.

재단은 이들이 유용한 연구비를 전액 환수하는 한편 관련 교수 5명에 대해 3~5년간, 박사급 연구원에 대해서는 1년6개월~2년간 연구비 신청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또 조사 결과를 연세대에 통보해 관련 교수에 대해 징계 등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재단 측은 "형사고발은 현행법상 어렵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재단은 다른 대학에서도 연구비 유용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혜 대학을 무작위로 뽑아 사용 실태를 연중 조사키로 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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