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환상에 갇힌 '착한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청와대가 중앙일보가 보도한 '착한 정부 환상을 깨라' 시리즈(11월 5일자 1, 5면, 6일자 3면)를 반박하고 나섰다. 이틀 연속, 국정브리핑을 통해서다.

국정브리핑은 먼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비과세.감면제도를 중앙일보가 '생색내기용'이라고 폄하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본지 기사 어디에도 중소기업.서민을 위한 비과세.감면제도가 필요없다는 대목은 없다. 단지 비과세.감면제도가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260여 개나 생겼고, 혜택도 중소기업.서민에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국정브리핑 스스로도 "비과세.감면은 정치권에서 선심성 정책으로 여겨 정책적 고려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입을 추진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제도야말로 시급히 정비하는 게 국민 세금을 아껴 쓰는 길이다.

국정브리핑은 또 "매우 합리적인 보유세제인 종부세를 '세금 방망이'라고 비판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고 주장했다. 또 "부동산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애초에 "예측 가능한 부동산정책"을 무너뜨린 건 정부였다. 종부세를 처음 도입한 2003년 10.26 대책 때 기준은 ▶아파트 9억원 이상 ▶사람별로 합산 ▶세금 증가 상한선은 전년 보유세의 1.5배였다. 그걸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2005년 8.31 대책 때 ▶6억원 ▶세대별 합산 ▶상한선 세 배로 바꿨다. 심지어 올해는 지방 정부가 재산세를 깎아주지 못하게 해 보유세 부담이 지난해의 세 배가 넘어가는 가구도 나올 정도다. 선진국 어디서 세금을 한 번에 세 배씩 올린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백번 양보하자. 8.31 대책을 내놓을 땐 '백약이 무효'로 집값이 폭등했다. 사정이 워낙 급했으니 극약 처방도 이해한다 치자. 그런데 요즘은 반대로 무더기 미분양사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약이 너무 셌기 때문이다. 이쯤 됐으면 세금 방망이는 그만 내려놓을 때도 됐다.

더욱이 세금을 분배 정의의 관점에서만 보는 건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다. 이젠 기업과 인재가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세상이다. 프랑스에선 얼마 전 국민가수 조니 알리데와 국민배우 알랭 들롱이 "세금에 질렸다"며 스위스로 이주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우리나라라고 잘나가는 국민 기업.인재의 탈출 러시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정경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