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달러보유 사상최대 환차손 고민도 쌓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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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일본이 가득 쌓인 외환보유액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돈 없는 나라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일 정부는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는 점에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달러의 약세가 계속되면 환차손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일 재무성은 지난 6일 1월 말 외환보유액이 7천4백12억4천6백만달러(약 78조엔)라고 발표했다. 불과 한달 사이에 6백77억달러 넘게 늘어난 것이다. 물론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는 2위인 중국의 4천69억달러(지난해 10월 말 기준), 3위인 유로지역의 2천4백80억달러(지난해 11월 말 기준)에 비해 월등히 많은 규모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늘고 있는 원인은 분명하다.

일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엔고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엔을 팔고 달러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엔고가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현재 수출이 지탱해주고 있는 일본의 경기회복 추세가 다시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일 정부는 지난달에만 월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7조엔이 넘는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였다. 일 정부는 이렇게 사들인 달러의 70% 가량으로 연 4%대의 금리(10년물 기준)를 보장해주는 미 국채를 매입하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일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평소 같으면 강하게 문제를 삼았을 미국이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 전쟁비용 조달과 대규모 감세 정책 때문에 빚이 쌓일 만큼 쌓여 있지만 경기는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어 장기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일본이 때마침 미 국채를 대거 사고 있어 금리 상승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내 소비와 설비투자 증가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도 미국 내 설비투자가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투자여력이 생긴 미 기업들이 일 증시에서 대거 순매수에 나서는 현 상황을 즐기는 측면도 있다. 즉 일본과 미국이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 정부가 시장개입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는데다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사들인 달러가 급락할 경우 막대한 환차손이 발생하고 이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말 환차손은 7조8천억엔에 달한 것으로 추 정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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