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한국化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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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 전통무예를 소재로 한 창작무협소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의 맥이 거의 끊긴 한국 무술의 세계를 작품으로 복원해 보려는 시도가 작가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고 20여년전 절판됐던창작무협소설이 재출간되는등 무협의 「한국화」바람이 일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무협작가 야설록(夜雪綠.34)씨가 가야시대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창작소설 『도,도,도(刀,屠,道)』를 곧 컴퓨터통신 하이텔에 연재할 예정이고 무협작가는 아니지만 소설가이병천(李柄天.38.사진)씨가 동학혁명 당시의 검객을 주인공으로 한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문학동네刊)를 연속 발간하고 있다. 또 비록 일본 사무라이소설을 번안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한국과 한국 무술인들을 등장시킨 최초의 무협소설로 꼽히는 69년작 『뇌검』(전5권.서지원刊)이 절판된지 20여년만에 다시 출판됐다.
국산 창작무협은 70년대부터 활발히 이뤄져 왔지만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도 무대와 주인공은 중국.중국인이었다.그런 의미에서야설록.이병천씨의 신작은 우리 역사 속에서 전통 무술인들의 활약을 찾아내는 역사 무협소설의 새로운 시도여서 국산 창작무협의중흥을 기대하게 한다.
夜씨의 『도,도,도』는 멸망한 가야왕조의 후손이 전통 무예인들에게 무술을 배워 중국.한국에서 가야 복권운동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夜씨는 원래 지난8월 연재를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가야왕국의 역사가 왜곡.축소돼전해지고 있고 신라에 대한 저항운동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격렬했음을 깨달아 보충작업을 하느라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夜씨는 『무공을 모르던 가야의 젊은 왕족이 한국 무술을 배우고 일본.중국무림과 얽혀 부활을 꾀하는 과정에서 일본.중국 무술에 대한 한국 무예의 우수성을 입증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9권중 3권까지 발간된 李씨의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는 동학혁명 말기에 체포된 전봉준(全琫準).김개남(金開男)을 구출하고자 하는 전통검객 은명기의 삶을 그리는 역사장편.그 과정에서 조선검과 일본도(日本刀)의 대결이 펼쳐진다.
작가 李씨는 『은명기가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허구의 인간도 아니다.고부에 들렀을때 은씨 성을 가진 한 노인에게동학혁명 당시 검으로 김개남과 전봉준을 구하려 한 조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 성만 따 인물을 만들 었다』고 말했다.李씨는 『구한말 우리나라의 전통 검법에 대한 자료를 보충해전통무예 복원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뇌검』은 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작가인 성걸(成傑)이출판한 책으로 고구려.신라.백제때 자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러나 자객들의 세계가 일본 닌자(忍者)들을 연상시켜 사무라이소설을 번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원래 무협 소설은 사마천의 『史記(사기)』중 「유협열전 游俠列傳(유협열전)」에서 비롯된 장르로 중국 중원을 무대로 중국 무술인들이 펼치는 무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게다가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독립적인 무사계층이 없어 한국 무술을 주제로 한 작 품이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한국적인 창작무협을 시도한 작품으로는 87년 김병총(金병總)의 『칼과 이슬』이 있고 비슷한 시기에 무협작가 금강(金剛)이발해의 유민을 주인공으로 해 쓴 『발해의 혼』등이 있다.
〈李 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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