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논술의힘] 법이 공평성을 잃어버린다면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7면

부당하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곧잘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말한다. 무의식 속에서 법은 공평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계급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법, 강자에게만 이익이 되는 법은 그래서 재검토되거나 폐기돼야 옳다. 프랑스 혁명도 구법(舊法)과 구체제가 특정 계급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무대가 된 1789년 7월의 대혁명 당시 프랑스의 국가 재정은 바닥난 상태였고 흉작과 물가 폭등으로 민중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그럼에도 성직자와 귀족들로 대표되는 구체제 옹호자들은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날품팔이 노동자 장발장은 누이동생과 조카 일곱을 부양하다 빵을 훔친 죄로 3년형을 선고 받는다. 가족 생계가 걱정돼 탈옥을 시도하다 13년 만에 만기 출옥한 장발장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밀리에르 신부의 은그릇을 훔친다. 하지만 밀리에르 신부는 그를 용서한다. 용서의 힘은 컸다. 장발장을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자베르 경감에게 장발장은 감시 대상인 전과자일 뿐이었다. 구법의 수호신과도 같은 자베르 경감은 집요하게 장발장의 뒤를 쫓는다. 장발장이 어느 소도시의 시장이 되자 자베르는 그가 과거에 탈옥수였다는 것을 공개하려고 한다.때마침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장발장을 존경하던 청년대원들은 자베르를 총살하려 한다. 하지만 장발장은 자베르의 총살을 말린다. 자베르가 그 이유를 묻자 장발장은 이렇게 답한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더 넓고 하늘은 그보다 더 넓소. 그러나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지요. 그것은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오.”

용서를 외면하는 법, 사랑과 관용을 모르는 법,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옹호해 주는 법, 현실에 존재하는 민중들의 고통과 한숨을 보지 못하는 법, 약자의 항변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법을 의심하지 않았던 자베르.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장발장에게 용서를 구한다.

『레미제라블』의 서문에서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쓰고 있다. “법률과 풍습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의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한, 가난에 의한 남성의 타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과 같은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 한, 어떤 지역에서도 사회적 진실이 통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하자면 더욱 넓은 의미에서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존재하는 한, 이 책과 같은 성격의 책들이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법의 공평성이란 따지고 보면 더 많은 사람을 껴안으려는 관용과 사랑의 정신의 발로다. 이런 원칙이 로스쿨 정원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김보일(배문고 교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