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물가 심상치 않다<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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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아유, 뭐가 이렇게 비싸요. 7000원에 주세요.” “8000원 안 줄 거면 그냥 두고 가요. 겨우 몇 백원 남기는 판인데….”

토요일인 3일 오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배추 한 망(3포기·10㎏ 내외)을 만지작거리며 상인과 흥정하던 최경희(62·서울 가락동)씨는 결국 무 2개만 6000원에 사 들고 시장을 나섰다. 집 앞 수퍼마켓보다는 조금이라도 싼 이곳을 즐겨 찾는다는 최씨는 “올해는 채소가 너무 비싸 시장 가기가 겁난다”며 “지난해 40포기 했던 김장을 올해는 10포기 줄여야겠다”고 말했다. 배추 흉작은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쓰레기 배출량까지 줄여 놓았다. 배추가 ‘금값’이 되면서 포기 겉 부분을 떼내 물건을 예쁘게 다듬던 모습이 사라진 것.

물가가 출렁인다. 이상 기후로 배추·대파·오이 등 흉년이 든 채소가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유가 때문에 서민들이 쓰지 않을 수 없는 휘발유 값도 폭등했다. 이미 올해 대중교통 요금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올랐다. 원자재 값 상승으로 제과·가구 업계도 가격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채소 값 폭등=이달 채소·생선·육류 등 신선식품의 물가는 지난해보다 11.6%나 올랐다. 채소 가격이 주범이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비가 이어져 채소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락동시장의 배추 값은 지난해의 네 배를 넘었다. 통계청 조사 결과 양배추(183%)·호박(94%)·오이(88%)·상추(77%) 등 거의 모든 채소 값이 뛰었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 노광섭 조사분석팀장은 “덥고 습한 날씨에 병충해 피해도 심했고, 땅이 마르지 않아 밭에서 썩어 버린 채소도 많다”며 “그나마 시장에 나온 배추도 알이 덜 차는 등 품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농수산물공사 측은 “김장철인 11월 하순께에는 출하량이 늘며 채소 값이 다소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 줄줄이 오를 듯=최근 국제유가와 원자재 값이 치솟으며 생필품 물가도 줄줄이 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평균 휘발유 소매가는 L당 1557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중형차를 모는 자영업자 이종훈(32)씨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8만원 정도면 꽉 채우던 기름값이 이젠 9만원이 든다”며 “장사 때문에 운행을 줄일 수도 없어 고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과자 값은 올해 이미 4% 남짓 올랐지만, 제과 업계는 추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말 7% 정도 올랐던 밀가루 값이 지난달 다시 15~20% 오르며 원가 압박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과 업계 관계자는 “과거 1000원대를 주종으로 내놓던 업체들이 신제품 가격을 1500~2000원대로 옮겼다”며 “내년 초에는 다시 중량을 조절하거나 값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원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고유가·원자재 가격 상승이 제조업체의 생산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생활용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인건비 상승 요구로 이어지며 물가 구조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미진·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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