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자원봉사>5.독일-경제부흥.統獨의 숨은 공로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사람은 누구나 인생길에 누구에겐가 사랑의 빚을 지게 됩니다.
자원봉사는 바로 그 사랑의 빚을 갚는 작업입니다.받은 것을 되돌림으로써 사랑의 씨앗을 더 넓게 뿌리는 작업입니다.
『라인江의 기적으로 불리는 戰後 서독의 경제부흥은 독일국민들의 자원봉사가 밑거름이 됐다고 할수 있지요.남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부상한 상태에서 여자들이 복구작업을 주로 해야 했는데 애들을 누가 봐주었겠습니까.모두 자원봉사자들의 몫이 었지요.』 얼굴 여기 저기에 이미 검버섯이 피고 백발이 성성한 루트 쉬뢰어 할머니(62).누가 봐도 이젠 거꾸로 자원봉사자들의 간호나받으며 쉬어야 할 입장인 쉬뢰어 할머니는 그러나 아직 자원봉사자로 맹렬히 활약하고 있다.
쉬뢰어 할머니는 현재 독일의 5대 자원봉사단체중 하나인 노동자복지연맹(AWO)베를린지부 산하 크로이츠베르크區의 한 사무실에서 회계를 맡아보고 있다.12년전 은퇴할 때까지의 직업이 구두판매원이었기 때문에 아직 돈 계산하는 일은 젊은 이들보다 자신있다고 했다.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처녀때인 47년이었습니다.어린애들을 돌보는 일이었는데 애들을 데리고 여행했던 일이 아직 생생히 기억납니다.이후 56년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으면서 간간이 자원봉사일을 하다 6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을 내 노인들의집을 방문,간호하는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저 남을 돕는 일이 즐거워 47년이란 긴세월을 돈 한푼 받지 않고 남을 위해헌신해온 쉬뢰어 할머니는『힘이 다할 때까지,아마도 죽을 때까지자원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남서쪽 그로스 글리니케 호수.포츠담시와 경계지역에 위치한 이 호수는 강을 끼지 않은 폐쇄호인데도 물이 수정같이 맑아 1백년만에 처음이라는 최근의 혹서때엔 인근 주민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모두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지만 건장한 체구의 한 청년은 쌍안경으로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공기 좋은 물가에서 대자연을 만끽하며 남을 돕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자원봉사일 가운데 가장 인기있고,따라서 경쟁이 치열한 일은 바로 저같은 수상구조원입니다.물론 무료봉사지요.』 14년동안 수상구조원으로 자원봉사를 해온 베른트 콜터만(26)은 자신의 일이 자랑스럽다며 입을 열었다.물리치료사라는 직업으로 월 4천마르크(약 2백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미혼남인 그는 직업 때문에 주말.휴일에만 자원봉사를 하 지만 이날은 월요일인데도 야간근무라 아침부터 나왔다.
『독일생명구조협회(DLRG)소속인 수상구조원은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수 있지만 우선 DLRG가 실시하는 수영시험에합격해야 하고 3개월이상 특수 구조훈련을 거쳐야 합니다.저는 1백m를 1분50초에,1㎞를 24분에 수영하고 잠 수한채 15m를 수영하는 사람에게 주는 금메달을 받은 A급 구조원으로 3명의 자원봉사자만 근무하는 이 호수의 구조팀장입니다.』 8년전베를린의 하벨江에서 자원봉사할 때 익사 직전의 50대 여인을 구조해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가끔 고맙다는 전화가 와 보람을 느낀다는 콜터만은 결혼 후에도 이같은 자원봉사일을 계속하겠다고했다. 콜터만처럼 독일에서 수상구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무려 50여만명에 달하고 있다.독일의 모든 하천과 호수,그리고 바다의 구조요원은 1백%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독일에서도 자원봉사는 교회등의 단체가 활발히 주도하고 있는데 신교의 사제단과 구교의 카리타스가 대표적이다.사제단의 경우 독일 전역에 어린이.노인.장애자.난민등을 위한 2만개의 각종 시설에 40만명의 유급직원과 50만명 의 자원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다.카리타스도 이와 규모가 비슷하다.
이밖에 회원 5백만명으로 최대 규모인 적십자사에 약 1백만명,AWO에 8만여명,그리고 파리테트복지연맹에 25만여명이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면 독일의 자원봉사자는 모두 얼마나 될까.
『자원봉사라는 게 원래「오른손 하는 일을 왼손 모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낼수는 없습니다.그러나 각종 단체가 주관하는 자원봉사나 개인차원의 활동을 모두 합치면 자원봉사를 할수 있는 연령의 독일인 3명에 1명은 자원 봉사자라 할수 있습니다.』 사제단 베를린지부의 에리히 코트닉 대변인의 이같은 주장에 비춰보면 8천만 독일인구 가운데 약 2천만명은 자원봉사자라는 계산이 나온다.
예컨대 독일체육협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스포츠분야에만 2백만명이 넘는 사람이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8만개에 달하는 각종 스포츠 클럽의 코치나 관리자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밖에 지하철에서 장애인 도와주는 사람,연극무대에서 조명하는 사람,심지어는 소방서의 구급요원도 자원봉사자들이 많다.선거때에는 약 70만명이 자원봉사로 일을 해주기도 한다.8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시장이 꽃다발이나 와인.현금 15마 르크 가운데 하나를 선물하는데,생일축하 카드를 쓰고 이를 직접 전달하는 사람들도 자원봉사자들이다.
「명예공무원」(Ehrenamt)으로 불리는 이같은 독일 자원봉사자들의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거의 모든 사회분야에서자원봉사자들이 활약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독일이 전후의 폐허를딛고 경제를 부흥시키고,나아가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아닌 자원봉사 때문이었다는 것이 취재중 만난 독일인들의한결같은 지적이다.
[베를린=劉載植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