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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경영학회심포지엄] "지나친 평등주의로 기업 투자의지 꺾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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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경영학회는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리더십: 외환위기 10년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열었다. 왼쪽부터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세희 한양대 교수,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 주인기 한국경영학회장. [사진=최승식 기자]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대량 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사회 양극화 등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양승함)와 한국경영학회(회장 주인기)는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리더십:외환위기 10년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열었다. 중앙일보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서는 전문가들이 모여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제의 문제점과 미래 전략 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올바른 리더십 정립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편집자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대응 전략-수출·내수 괴리 극복 위해 부품산업 키워야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제 문제점과 향후 대응 전략’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참여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비판했다.

윤 교수는 “참여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형평과 균형분배 등의 이념을 내세워 자유주의보다는 평등주의에 힘써 왔다”며 “이로 인해 경제주체들이 ‘경제 하려는 의지’가 퇴색되면서 경제의 활력이 저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등을 우선적으로 지향하게 되면 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점으로 ▶노령화 가속화 ▶양극화 심화 ▶재정건전성 악화와 정부 부문의 팽창 ▶공적 연금의 부실화 ▶저투자·저성장·고실업 기조의 정착 ▶부동산 가격 폭등과 후유증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 심화 등을 꼽았다.

윤 교수는 중진국 상위국가(advanced emerging economy)로 평가되고 있는 우리 경제가 선진 경제로 도약하려면 연평균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성장률의 저하로 이를 달성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내수 침체로 인해 수출로만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외끌이 현상’이 정착된 것은 크게 우려할 만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수도권 규제 등 투자제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또 수출과 내수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윤 교수는 “우리 경제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인해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금융 등 취약한 부문에서는 국부 유출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금융회사들도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글로벌 투자자와의 네트워크 구축, 해외시장으로의 전략적 진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키우고 발전시켜 경제발전을 일궈왔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이처럼 어렵게 키워온 기업들의 힘이 떨어지고 노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참여정부의 공헌 중 하나가 바로 좌파적 이념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상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금융산업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게다가 카드나 부동산대출 등 잠재적 위험까지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10대 금융강국으로 도약하자는 의견에는 정부나 업계 모두 동감하지만 지배구조, 고용, 서민금융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정부와 업계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투명성 좋아졌지만 혁신 능력은 떨어져

‘외환위기 이후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와 시사점’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우성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제, 감사위원회, 소액주주권 강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상을 하면서 영미식 제도들이 대거 유입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 같은 현상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며 “1997년 이전에 사외이사, 감사위원 등이 일반화된 나라는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정도였지만 현재는 거의 모든 아시아 기업들이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연구원은 이 같은 영미식 제도가 회계 투명화 등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우리 기업의 고유한 혁신 역량 등 특성을 사라지게 한 요인도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 외환위기 이전에는 쉽지 않았던 외국자본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이 일반화된 것도 큰 특징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의 기업 지분 소유제한 철폐를 통해 시장을 대폭 개방했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며 “현 시점에서 볼 때 시장의 개방에 따른 적절한 방어 전략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한 기업 지배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적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 활동의 지향점이 장기적인 기업 성장에서 주주 가치의 극대화와 주가 상승을 위한 단기 수익 확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단기이익 추구가 고용과 장기적인 경제성장 등에 악영향을 미쳐 국가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신(新)산업 육성에서도 미국 등과 차별화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산업적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며 “첨단 산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독창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대중 정부가 기업 규제를 하게 된 것은 선단식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며 “이로 인해 기업의 경영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또 “기업의 경상이익률이 2004년을 정점으로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이를 일부에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사실은 금융비용의 절감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즉, 부채비율이 낮아져 이자 부담 등이 크게 줄어든 것이 실적 호조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정부의 전략과 정책-성장 잠재력 위축으로 소득격차 더 벌어져

“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와 생산적 복지를, 노무현 정부는 참여민주주의와 지역·계층 간 균형 발전을 국가 의제로 내세웠지만 제대로 결실을 얻지 못한 측면이 크다.”

지주형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는 ‘97년 경제위기 이후 정부의 전략적·정책적 교훈’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렇게 평가했다.

지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노동계를 합법적 틀로 이끌어 내려고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으며, 노무현 정부도 주민소환제 등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했지만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 교수는 “두 정권 아래서도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지속됐다”며 “자민련에 의원을 꿔주거나 다수당이 되기 위해 의원을 빼내 온 것 등이 그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두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지 교수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금융지향적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본 축적에는 기여를 했을지 몰라도 국민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성장 대신 재무적 안정과 단기수익 높이기에 주력한 결과 장기 성장잠재력이 위축됐고 정리해고, 명예퇴직, 비정규직 등이 야기한 고용 불안정 등이 소득격차를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산업 측면에서도 상위 재벌들이 주도하는 수출지향적 하이테크 산업, 외국인 지배하의 금융산업과 이에 대비되는 경공업 및 굴뚝산업으로 양분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 교수는 “권위적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과거의 권위주의 개발독재에 비해서는 훨씬 개방적이고 민주적이었지만 여전히 국민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으며 국가 역량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발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벌기업과의 연대보다는 시민사회의 폭넓은 지식과 지지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이연호(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두 정권이 권위주의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역대 정부 중 두 정권만큼 시민사회와 노동단체들을 지원한 정부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며 “일부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제도가 경제정책의 실패를 보완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 부문의 경제·사회적 역할 증대를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글=최익재 기자, 김희영 객원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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