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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변해야미래가산다>6.입학=졸업 더이상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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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대체 왜 내 강의를 안들으려고 하느냐.』 延世大 개강 첫날인 지난 1일 법정대의 한 강의실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강의를 기피하는 이유를 묻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전공필수과목인 이 강의는 A,B반으로 나눠져 있는데 다른 교수가 맡은 B반으로만 수강신청이 몰렸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는 학생들을 설득해 듣게 된 대답은『강의가 깐깐하고 학점도 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였다.
이에앞서 2학기 수강신청 전날인 지난달 24일 접수처인 공대전산실 앞에는 1백50여명의 학생들이 오후7시부터 장사진을 이뤘다.「인기강좌」는 선착순으로 접수를 마감하기 때문이다.『명강의도 없진 않지만 대체로 수업은 느슨하게 하고 학점은 후하게 주는 강좌가 인기있어요.교수가「A폭격기」(무차별로 A학점을 주는 교수)로 소문나면 최고지요.』밤새워 줄을 섰던 어느 2학년생의 말이다.
공부를 많이 시키든가 학점이 짠 강좌는 존폐위기에 놓인다.서울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학점이 짜다고 소문이 나니 수강생이 계속 줄어 차라리 학점을 후하게 주고 강좌를 유지하는 것이 나을 것같아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교양과목은 2 0명,전공과목 7명으로 정해진 최소 인원에 미달하면 강좌가 폐강되기 때문이다.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쉽게 학점 따서 졸업하려는 오늘날 대학생들의 풍조를 보여주는 작은 예들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너무 편하게 공부하고 쉽게 졸업한다.수업시간은 적고 강의는 일방적 주입식이며 과제물과 독서량도 별로 많지 않다.한마디로 학사관리가 허술하다.
『한학기 16주 강의가 규정돼 있지만 대개는 잘해야 12주,어쩌다 보면 10주.8주 강의로도 한 학기가 지나간다.교수는 세미나.위원회 등으로,학생은 수련회.체육대회.축제 때문에,학과에서는 답사.현장견학.수학여행.학과의 날 명분으로 휴강한다.중간고사와 학기말 시험에 1주씩 배당하기 때문에 16주는 아예 14주로 자르고 들어간다.방학은 거의 5개월이 넘는다.
수업을 적당히 해도 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규율.약속을 적당히 해도 좋다는 것으로 이어진다.교육과정의 기강도.교육평가의 기강도 무너진다.이렇게 놀고 먹는 대학은 세계에 없다』(鄭範謨한림대총장).
수업내용에 있어서도 학생이 참여하는 토론식.공동탐구식 진행은많지 않고 일방적 강의가 주류를 이룬다.따라서 책 한페이지 안읽고 수업에 들어가도 수강에 별 어려움이 없다.한학기에 교재 한권에 참고서적 2~3권을 읽으면 괜찮게 공부한 편이고 리포트는 2~3개 제출하면 충분하다.
학기 시작때 내주는 강의계획서에 날짜별 강의주제와 한학기 5~12권의 필독 도서,평가방법 등을 자세히 제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미국 대학에 비하면 우리 대학생들은 너무 편하게 공부한다.
이같이 허술한 강의 운영에 대해 교수도 할 말은 있다.
서울대 공대의 한 중진교수는『대학원까지 주당 12시간씩 강의를 맡으면서 조교도 없이 어떤 교양과목은 한반에 70명이 넘는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토론식 수업은 물론 불가능하고 일일이 읽고 고쳐줄 엄두가 나지않아 과제물 부과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기를 쓰고 공부해 일단 입학하면 1,2학년은 해방감에서놀고 3학년부터는 학과 공부보다 취직준비에 신경쓰다 보면 어느덧 졸업으로 이어지는게 우리의 현실이다.도서관은 만원을 이뤄도취직시험 준비파들이 대부분이다.대학가 시위가 끊일 날이 없었던과거에 비해 최근 대학의 면학 분위기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지난달 교육부는 1학기 학사경고 제적자 수가 지난해 같은기간의 두배에 가까운 1천5백74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대학의 학사관리가 엄격해져 크게 늘어 났다는 제적자수는 그러나 전체 학생의 0.18%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정도 수치가「뉴스」가 되는 현실이니「입학=졸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최근 3년간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졸업률은 95% 안팎이다.
그러나 외국은 어떤가.미국 대학의 졸업률은 74%,호주는 53%에 불과하다.유럽은 더해 프랑스 파리대학 10대학의 인문대,독일의 본 대학등은 각각 2,3학년에 올라갈 때 50%의 학생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다.베를린 공대의 경우는 3만8천명의 학생이 있으나 연간 졸업생은 2천7백명 밖에 안된다.세계적으로 높은 우리 대학의 졸업률이 부끄러울 정도다.
홍익대 대학종합평가 대책 실무단장 서정하(徐柾河)교수(전자공학과)는『입학을 하면 모두 졸업하게 되는게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엄격하게 학사관리를 하면 학업에 의욕이 있는 학생 절반정도에 A나 B학점을,나머지는 F학점을 줄 수밖에 없다』며『그러나 이를 실행하려면 교수와 기자재를 충분히 갖춰 교육여건을 충실화 해야하며 미국처럼 한 대학의 기준에 미달 하면 다른 대학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개방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趙顯旭기자〉 ◇다음회에는「학생선발은 대학에 맡겨라」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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