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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황세희의몸&마음] 팜므 파탈의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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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민적 관음증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권력의 실세와 미모의 젊은 여성 간 스캔들은 검찰이 학력 위조에서 비롯된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면서 일단락 되는 듯싶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세간의 화젯거리다.

 “중년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매력적인 젊은 여성과의 로맨스를 꿈꾸지요. 정말로 본인에게 그런 기회가 왔을 때,사회문화적 규범에 얽매여 단호하게 유혹을 떨쳐 버릴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런 말을 하는 J씨(47)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힐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 역시 제3의 배후나 권력 남용이 아닌, 둘 간의 사적인 관계에 있었다.
 그의 말투에서 얼핏 사랑의 향수를 엿본 나는 “그렇다면 그런 로맨스를 경험한 남자는 현실적인 결과가 참담하더라도 마음속에 여한은 없겠네요?”란 짓궂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한 어투로 “여자도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전제가 있다면요. 만일 여자에게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남자는 팜므 파탈(Femme Fatale:마력으로 남성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요부)의 덫에 걸린 피해자로 봐야지요”라고 답한다.

 단란한 가정의 상징인 정실부인과 열정적 사랑의 대상인 젊은 여성을 동시에 소유하려 했던 중년 남성은 피해자로, 젊은 미모를 담보로 남성의 권력(능력)에 기댄 채 세상을 멋지게 살고자 했던 독신 여성은 악녀로 묘사되는 순간이다.

 잘나가는 중년 남성 S씨는 이미 문제의 권력자 입장에 서 있었다.‘나도 팜므 파탈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젊은 여성에 대한 비난의 형태로 투사(projection)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시각은 이번 스캔들을 접하는 여성들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이유는 다르다.

 잘난 남편 둔 조강지처들은 ‘내 남편 역시 어느날, 매력적인 젊은 여성에게 유혹당할지 모른다’는 마음속 불안감을 팜므 파탈로 묘사되는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투영한다.

 일하는 여성들 역시 비난의 대상은 젊은 여성이다. 그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생존하면서 업무 능력은 뒤처져도 뛰어난 여성미 덕분에 남성 실력자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 했던 여자 동료를 좌절감으로 바라봤던 뼈아픈 경험이 되살아 나서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남성들의 뇌 속엔 젊은 여성에 대한 선호와 갈망이 수백만 년에 걸쳐 각인돼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기 위해선 임신 능력이 있는 젊은 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가임 능력은 20대에 최고조에 달하며, 35세 이후 출산은 이미 노산(老産)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지구촌 어디건 성공한 남자가 딸뻘의, 때론 손녀뻘 젊은 여성을 애인 혹은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으로 맞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또 뭇사람의 비난과 무관하게 팜므 파탈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다.

 팜므 파탈에 대한 비난으로 부적절한 처신을 한 남성이 부분적으로나마 피해자인 양 호도될 수는 없다. 진정한 피해자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좌절감을 맛봐야 하는, 권력도 매력도 없이 묵묵한 성실함으로 매일의 삶을 정직하게 꾸려가는 대다수 시민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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