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사이드 스토리] 차·모델의 잘못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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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지난달 27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메세에서 개막된 도쿄모터쇼장은 그야말로 아이디어와 미래형 차의 컨셉트로 충만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개된 닛산의 스포츠카 ‘GT-R’은 그 앞에 몰려든 인파를 뚫지 못해 구경도 못 할 지경이었지요. 아우디의 컨셉트카 ‘메트로프로젝트 콰트로’는 내년에 출시될 신차 A1을 미리 보려는 관람객으로 내내 북적였습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컨셉트카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습니다. 미쓰비시의 전기차, 도요타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그들의 친환경 기술을 보여 줬죠. 도요타의 아이리얼이나 스즈키 픽시는 ‘1인용차’라는 새로운 컨셉트를 제시했습니다. 혼다의 푸요와 닛산 피보2처럼 아예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차들도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유럽·미국·일본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저마다 뭔가 하나는 ‘독특하다’할 만한 것들을 보여 주며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자동차 업체로는 유일하게 현대차도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그 붐비던 전시장에서 현대차 앞은 한산하더군요. 현대차 관계자는 “메인차인 i30를 돋보이게 하려고 이 차 앞에 있는 여성 모델을 한국에서 데려왔고, 옷도 다른 모델들과 다르게 입혔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현대차가 전시한 5개 차종 중 유독 i30의 모델들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랜저나 투스카니 등 다른 차 옆엔 정장 재킷을 입은 모델이 서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차별화 노력’은 별로 소득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여성 모델들을 주목하는 관람객은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현대차에는 컨셉트도 신차도 없었습니다. 물론 카르막이라는 컨셉트카가 있었죠. 그러나 이 차는 이미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됐던 차량이었습니다. 또 기술이나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다른 업체들의 컨셉트카와 달리 디자인 차별성만 보여 준 차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 어려웠습니다. 모터쇼에서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은 여성 모델이 아니라 자동차모델이라는 사실을 현대차 측은 잠시 잊어버렸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공들여 준비한 i30 모델의 의상도 차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습니다. 우아한 원피스와 동글동글한 소형 해치백은 부조화였습니다. 다른 글로벌 업체들은 스포츠 왜건엔 가죽재킷, 소형 스포츠카는 미니드레스, 고급 스포츠세단엔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히는 식으로 차의 이미지에 모델을 맞췄지요.

 현대차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선 연간 2000대 정도밖에 팔지 못하죠. 일본 시장도 분명히 세계의 중요한 자동차 시장인데 말입니다. 모터쇼는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와 비전을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보여 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단지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기엔 아까운 기회죠. 앞으론 모터쇼에서 아름다운 여성 모델이 아닌 ‘현대차’를 보고 싶습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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