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기업>국내최초 신발공장 자부심-군산(주)鮮禾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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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근로자들이 똘똘 뭉쳐 향토기업으로 맥을 잇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신발공장인 ㈜京城고무(전북군산시장재동)가 잇단 화재와 경영난으로 社主가 바뀌고 법정관리를받는등 우여곡절 끝에 ㈜鮮禾로변신,향토기업의 전통을 잇고 있다. 경성고무가 문을 연것은 1932년11월13일.재력가 李晩秀씨가 군산항개항으로 원료수입과 제품수출이 용이해지자 군산역 근처에 공장을 짓고 종업원 1백여명을 모아 개인회사로 출발했다.
처음엔 재래식 도구.연장에 의존해 검정통고무신을 만들었으나 그후 신기술.기계도입과 생산시설을 늘리는 한편 품목을 흰고무신.장화까지 확대해 62년 처음으로 장화 2만달러를 미국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창업주 李씨가 타계한후 아들 李容一씨가 뒤를 이어 64년8월2대 사장으로 취임,4년만에 고무신.장화.운동화를 동시에 생산하는 종합시설을 갖추고 68년 4백70만달러어치를 수출해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야구광인 李씨는 야구후원에 발벗고나서「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일궈내 군산지방에서는「야구代父」로 존경받았다.
지난 70년7월초 공장에 불이나 가동이 중단됐을 때 국교생들이 야구를 후원해준 보답으로 성금을 모아 재기를 도왔다는 일화만으로도 당시 경성고무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74년4월 또다시 화재가 발생,큰 타격을 받았고 불황으로 제품이 팔리지 않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李사장은 자리를 물러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에 따라 78년11월 그동안 수출창구를 맡아왔던 ㈜鮮京이 빚을 갚고 경성고무를 인수,83~85년사이 전주공단에 봉재등 부품라인과 전주공장을 증설했으나 연간 20억원씩 적자가 계속되는등 폐업위기에 몰렸었다.
선경측은 당시 공장장이던 蘇在雄씨(선화 대표)에게 회사를 인수토록 제의했고 蘇씨가 現전무 金斗喜씨등 15년이상 한솥밥을 먹은 세명과 뜻을 모아 88년초 퇴직금을 담보로 경영권을 넘겨받아 오늘에 이른것.
이들은 종업원들에게 경영상태를 공개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개발을 서두르는 한편 접대비등 불요불급한 지출을 동결하는등 군살빼기에 들어가 경영혁신을 이뤘다.
선화는 3년만에 적자에서 벗어나 91년초 외한은행의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됐고 한국은행으로부터 해외투자를 허가받을 정도로 경영이 개선돼가고 있다.현재 수출규모는 연간 2천만달러.
사장 蘇씨는『내고향 기업이라는 끈끈한 정이 어려울때마다 똘똘뭉치는 응집력을 이뤄 난파될 고비를 넘겼다』며 『새기술.신제품개발로 해외시장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群山=玄錫化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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