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할말은하자>24.없애야 할 정부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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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총체적으로 볼 때 극단적으로 표현해 하나의 기관으로만 존재하고 있다.수많은 개별 대학들이 있지만 기구의 구조,교육과 연구의 조직,학사의 운영,교직원의 임용과 보수,학생의 선발과 졸업,각종 법규들에 있어 대동소이 한 양상을 보여준다.
모든 부문의 기본적인 골격이 중앙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고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개별 대학들이 자율적인 결정력에 의해 자체의 개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주어져 있지않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하나 의 대학」으로만존재한다는 말이다.
해방 직후와 같이 대학이 소수에 불과하고 스스로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관리를 하기가 어려웠을 때 중앙정부의 통제와 지원은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유야 어떻든 간에 70년대와 80년대의 통치체제아래서 대학을 자율화한다는 것은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었음을 인정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사회가 그 규모에 있어 엄청나게 대형화되어있고 정치적 부담도 한결 가벼워진 지금에 와서도 개별대학들이 제도적 체제와 통치행태에 있어 중앙정부가 정한 규칙에 여전히 묶여 있다는 것은,대학 자체의 성장을 위해서나 국가가 요청하는역할의 수행을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한 것일 수 없다.
이제 우리의 대학들은 국가의 통제아래서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잠재적 역량이 일천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개별대학들이 국가에만 의존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도 아니다.
변혁을 요구하는 것은 반드시 선진국의 기준을 추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군사부문을 제외한 국가의 여러공조직들이 분권화를 진행시키고 있고 보통교육도 자치제도의 기틀을 마련해가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국 .공립이나 사립이나 할 것 없이 여전히 자치적 존립의 제도적 조건을 제대로제공받지 못하고 있다.이는 대학정책의 후진성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셈이다.
특히 최근에 자주 언급되는 21세기의 개방세계와 경쟁세계에 대응하는데 있어 대학의 자생력과 자율성은 사회의 어느 조직보다절실하게 요청된다.그것은 대학이 어차피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는 대열의 선봉에 서야 할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자율성은 대학 구성원의 권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세계의 대학들이 「문명의 심장」으로서 역할을 해온 것은 고도의 학문적.
전문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을 향유한 만큼의 결실이다.자율성과 자생력은 대학이 지닌 생명력 그 자체 다.그것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학에 사회적 책무성을 물을 근거를 잃어버린다.
사실상 엄격히 따져보면 자율성과 개성의 역사를 지니지 못한 대학에 누가 그 운영의 도덕성이나 기능의 부실성,공신력 실추의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물론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한 원인을 반드시 국가의 정책적 빈곤에만 돌릴 수는 없다.역량을 의심받고 있는 개별 대학들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재앙」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소극적 태도도 자율 혹은 방 임의 상태에서 발생할 무정부상태를 우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통제의 고삐를 움켜쥐고 성숙을 기다린다고 해서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오히려 통제의 전략적 방향을과감히 바꾸어야 한다.제도적 규제나 행정적 지시와 같은 「직접적 통제」에서 벗어나 개별 대학 혹은 대학사회 의 자율적 통제를 전제로 하여 성취한 책무성을 평가하고,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에 대한 정보를 그 소비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체제를대학사회에 정착시키는 「간접적 통제」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에 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발적 움직임이 활발해지고,정부의 주도 아래 있기는 하지만 대학의 모든활동에 대한 평가체제를 구축해가는 것은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해매우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많은 대학들이 과거처럼 양적 규모만을 자랑하거나 정부에만 의존하거나주어진 위세의 서열에 안주하고자 하는 나태한 태도를 벗어나기 위한 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구상과 의지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여건도 다소 좋아지고 있다.학생소요 문제에 대학이 정력을 덜 소모하게 되었고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과거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으며 제도적.정책적 경직성이 조금씩 누그러져 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부의 지도력은 낡은 통제의 장치들을 과감히해체하고 개별 대학들과 대학사회가 스스로 질적 관리와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는 제도적 조건을 조성해주며,또한 교육과 연구의 서비스를 위한 경쟁적 구조를 구축하는데 발휘되어 야 한다.그리고 각 대학이 자체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실현해 다양한 교육욕구의 충족과 균형적인 인력개발의 능률을 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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