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잘 팔려고 제빵업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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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국내 대표적인 도자기 업체인 행남자기가 창업 62년 만에 처음으로 외도를 했다. 이 회사는 최근 서울 신사동 사옥 1층에 빵 가게를 열었다. '크리스피 앤 크리스피'란 브랜드로 1호점의 간판을 내걸었다. 도자기를 구우면서 빵도 굽기로 한 것이다. 이의 경영성과를 지켜본 후 전국으로 가맹점을 넓힐 계획이다.

행남자기는 우연히 제빵사업을 하게 됐다. 본사 빌딩에서 주부 고객을 대상으로 제빵 강좌를 연 것이 계기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제빵 학교를 졸업한 제빵기술자의 강의가 인기를 끌었다. 이를 지켜본 이 회사 김용주 회장은 무릎을 쳤다. 제빵 사업을 하면 도자기 판촉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金회장은 "우리 회사 역량(지난해 매출 7백억원 규모)에 비춰보면 제빵 사업은 투자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고객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 넣자는 계산도 있었다.

金회장은 "전례 없는 내수 불황으로 지난해가 창업 이래 가장 힘들었다"며 "수익 기반도 넓히고 임직원들의 사기를 고려해 신규 사업을 벌인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크리스피의 빵은 인공 첨가제를 넣지 않고 자연 발효를 해 담백한 맛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외국대사관이나 외국인학교 등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소 정강이뼈인 본차이나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처럼 이왕 제빵 사업에 나선 만큼 소비자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빵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남자기는 제빵사업에 나서면서 한편으론 내실을 다지고 있다. 지난해 흑자를 냈지만 이익규모가 기대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본금 대비 90%에 이르는 차입금을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金회장은 "인도네시아 법인의 지분 일부를 이미 팔았고 올해도 다른 기업에 투자한 지분를 처분해 연내 부채비율을 50% 수준으로 끌어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내 도자기업체 중 처음으로 도자기플랜트를 해외에 수출할 만큼 경쟁력이 있었던 기계 사업도 그만뒀다. 수주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내수가 살아날 때까지 전략적으로 수출은 늘린다는 방침이다. 최근 본차이나 도자기의 본고장인 영국에 제품을 수출했다. 수입 업체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세계적인 도자기 업체다.

그 영국 업체는 행남자기의 품질을 따져 본 후 장기 계약을 하길 바랐다. 그러나 金회장은 매년 계약을 새로 하자고 했다. 金회장은 "장기계약을 하면 하청업체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독자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나서겠다는 회사의 비전과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행남자기는 곧 내수 시장을 겨냥해 신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金회장은 "이달 중 우리의 전통문양과 외국의 디자인을 섞은 퓨전 형식의 도자기를 내놓을 것"이라며 "올해 내수 시장에서도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윤희 기자

◆행남자기=우리나라 최초의 도자기 업체다. 1941년 설립됐다. 김준형(91) 창업회장이 당시 전기업체에 다니던 선친의 뜻에 따라 회사를 만들었다. 선친은 일본의 전기부품 회사가 선물로 준 생활 도자기를 보고 "도자기는 일본에 뒤질 것이 없다. 한번 만들어 보라"고 金창업회장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당시 그 일본 업체는 절연 제품인 애자(碍子)를 만들면서 도자기를 같이 생산하고 있었다. 목포에 터를 잡은 金창업회장은 전통 방식의 가마에서 도자기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국내 최대의 도자기 업체가 됐다. 2002년엔 경기도 여주에 세계최대 규모의 공장을 증설했다. 김용주(66)회장은 金창업회장의 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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