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 동서와의 '반란'을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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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저녁 설거지를 하다 문득 동서 생각이 났어. 지난 설날 그 껑충한 몸으로 엉거주춤하게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던 고단한 모습. 동서가 나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었지?

"어머님과 형님은 어쩜 그렇게 부지런하세요? 한시도 쉬지 않으시고 …." 그 말 속에 힘들고 낯선 명절 풍경에 대한 동서의 마음이 담겨 있는 걸 알면서도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어.

우리나라 명절은 여자들에겐 '일만 하면서 시간 때우는 날'인 것 같아. 남자들과 아이들은 때때옷 입는 명절이지만 여자들은 앞치마를 벗지 못하니…. 아무 의미도 없이 온종일 음식 만들고, 나르고, 상 차리고, 상 치우다가 2~3일이 후딱 가버리고 가끔 훈장처럼 입술이 부르트곤 하지.

지난 10년간 주부로서 명절을 치르며 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런 문화에 파격적으로 응수할 만한 적극적인 성격도 못되고 어머님과 신경전 벌이는 것도 싫어서 그냥 견뎌 왔어.

근데 이제 '동서'라는 동지가 생기니까 명절문화를 바꾸고픈 용기가 조금은 생기는걸.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많이 오시는 것도 아니니까 음식 차리는 일은 그만두고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는건 어떨까? 다같이 해돋이를 보면서 소원을 빌고 덕담도 주고받는 새해,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서로 등도 밀어 주며 진짜 정을 쌓아가는 설날. 고즈넉한 산사에서 온 가족이 새벽 산책을 하는 것도 좋겠지? 이런 설날의 풍경을 담은 '우리 가족 설날 앨범'을 하나 만들면 추억이 고스란히 쌓일 텐데...

애교 많은 동서가 뒤에서 잘 받쳐주리라 믿고 내가 큰 용기를 내 볼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가능하리란 즐거운 예감이 든다. 신나는 다음 명절을 위해 우리 파이팅!!!

변소영 17기 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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