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2007대선릴레이칼럼⑦

이회창 변수의 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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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결국 또 ‘사람’만 남았다. 선진 정치는 정책으로 승부하고 후진 정치는 사람으로 승부한다더니 50일도 채 안 남은 대선에서 정책·정당·시대정신·리더십은 간 데 없다. 나라 안의 모든 눈과 귀는 몇 사람의 손과 발과 입에 온통 쏠려 있다. 김경준이 손 한 번 들고(一擧手), 이회창이 발 한 번 들이밀었을(一投足) 뿐인데 요지부동이던 여론이 출렁일 조짐을 보인다. 범여권이 별다른 흥행 카드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젠 박근혜의 입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김경준은 2주쯤 뒤에 온다고 하니 말 그대로 ‘개봉박두’다. 기대 또는 불안 속에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여기에 ‘이회창 변수’가 돌출했다. 그가 나온다면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박근혜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 범여권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수일 내로 내놓은 발을 거둬들일지 한발 더 내디딜지 결정한다고 하니 두고 보면 될 일이지만 흥미 없던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회창씨 지지율은 14%대에서 20%까지 다양하다. SBS 조사에서는 19%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17%)보다 앞선 2위를 기록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38%로 떨어졌다. MBC 조사에서는 이명박 40%, 이회창 22%, 정동영 13%로 나왔다. 이회창씨의 출마가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가장 크게 잠식하기는 하지만,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 등 범여권 후보의 지지율도 함께 떨어뜨린 셈이다.

사실 지금 국면에서는 이회창씨의 지지율보다는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 하락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기는 범여권에 먼저 찾아올 수 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에서 이 전 총재와 이명박 후보, 박근혜 전 대표 등이 범여권 후보들보다 더 중요한 뉴스메이커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씨와 범여권 후보 사이에서 ‘중간자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 위기를 느낀 이명박 후보가 외연 확대를 위해 호남·충청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범여권 후보 단일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후보의 지지도가 35% 밑으로 떨어진다면 범여권에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범여권 후보도 대선 막바지엔 30%대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고 이회창씨도 20%대를 넘나들 것이다. 이 경우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박 전 대표가 정권 교체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경우 한나라당 지지층은 빠른 속도로 이명박 후보로 결집하고 이회창씨는 1992년 정주영 후보처럼 막판에 쭉 밀려 버리거나 완주를 못할 수도 있다. 반대로 총선을 앞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이회창씨를 지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대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혼전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2002년보다 훨씬 우측으로 이동한 고령의 이회창씨는 20∼40대에서 취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승산은 별로 없어 보인다.

좀 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회창씨 측이 출마의 논리로 내세우는 이명박 후보의 ‘유고’ 상태다.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테러가 발생할 경우 대선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송환된 김경준씨가 BBK 의혹에 대해 결정적 증거나 증언을 한다 해도 검찰이 나서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문제를 수사하지 못했던 것도 자칫 대선 실종 사태가 벌어질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1년 이상 압도적으로 1등을 하던 후보가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이라면 대선은 대혼란에 빠져들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회창씨가 원하는 것처럼 이명박 후보의 표가 그대로 그에게로 옮겨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우측으로 너무 멀리 갔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