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화 첼로독주회를 보고-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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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마디로 말해 잔잔한 감동의 연속이었다.가을의 문턱에서 12년만에 독주회로 고국 무대에 우뚝 선 鄭明和의 모습은 「이제는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은」한송이 국화꽃이었다.지난 6일수원 경기도문예회관 대강당에 스트라디바리를 들 고 나타난 정명화는 30년 知己인 피아니스트 새뮤얼 샌더스와 함께 濃密한 실내악 한마당을 펼쳤다.
유엔 마약퇴치 친선대사로 위촉된 정트리오의 리더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서 정명화의 활약상은 이미 잘 알려진 바있다.수원과 서울.광주에서 독주회를 가짐으로써 서울이 앞으로 연주활동의 주무대가 될 것이라는 예고를 한 셈이 다프랑퀘르의 첼로 소나타 E장조로 시작된 이날 연주회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d단조를 거치면서 점입가경으로 청중을 몰고 갔다.初演 작품 이영조의 「첼로와 장고를 위한 도드리 1」에서 느끼는 질펀함은 나이가 들수록 되살아나는 어릴 때의 입맛처럼 정명화의 손끝에서 본능적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앞으로도 한국작곡가의 新作에 관심을 갖는 일은 다른 연주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작품에 관해 말한다면,연주효과에 치중한 나머지 구성력이 결여된 습작처럼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다.장고의 원색적 리듬이 살지 못했고 첼로와 장고의 2중주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옳았다.
후반부에 연주된 낭만 소품들이야말로 이날 연주의 白眉였다.쇼팽의 연습곡 e단조,차이코프스키 녹턴 작품 19의 2,다비도프의 「분수에서」,슈베르트의 서주와 주제와 변주곡에서 보여준 깊은 서정성은 물흐르듯 자연스러움과 끊임없는 명암의 대비,거침없는 유창함으로 청중과 깊은 교감으로 이어졌다.현란한 기교가 돋보였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강조해야 할 부분과 과감히흘려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여 악상의 부각에 충실함으로써 날카로운 예민함보다 포용력을 미덕으 로 삼을 줄 알았다.
귀족적이고도 웅장한 멋에 정확한 음정 구사력만 곁들였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국내 레이블과의 CD제작을 앞둔 무대여서 소품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템포가 빠른 악구나 급격한 음역 전환에서 결정적으로 불안한 음정이 노출된 것은 나 이 탓일까.
새뮤얼 샌더스는 특유의 영롱한 음색으로 첼로의 동반자로 때로는 앙상블의 리더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가끔씩 짓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의 밤이라는게 차라리 옳았다.쇼스타코비치의 2악장이 끝나고 터져나온 박수를 제외하면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의 분위기도 수준급이었다.서울에서 온 청중들도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경기도 문예회관은 수 도권 청중들을 유치하는 과감한 기획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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