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새 6.3원 급락 … 제2 환율 쇼크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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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31일 장중 한때 900원이 붕괴되면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3원 떨어진 900.7원으로 마감했다. 장중에 899.6원까지 떨어졌다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으로 간신히 900원대를 지켰다. 이날 환율은 1997년 8월 22일(899.8원) 이후 10년2개월 만에 최저치다.

외환은행 구길모 차장은 "오늘 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정책금리 인하 관측이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증시에선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이 호재로 작용해 이날 코스피 지수는 12.48포인트(0.61%) 오른 2064.85로 장을 마감해 다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 800원대가 대세=시장에선 '원-달러 환율 800원 시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환율이 경제의 체온계인데, 최근 미국 경제체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 미국 대도시의 주택가격은 5% 이상 하락해 16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또 10월 소비자신뢰지수는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 금융회사들과 P&G.US스틸 등은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실적을 내놓았다. 부채(경상수지 적자.재정수지 적자)에 의존해온 미국 경제의 허약한 체질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메릴린치의 통화 부문 수석전략가 스티븐 잉글랜더는 30일(현지시간) "원-달러 환율의 중장기 적정가치(Fair Value)는 841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적정가치가 목표가를 의미하거나 단기적으로 환율이 그 수준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국내외 여건에 비춰 원-달러 환율의 하락 쪽에 무게를 두었다.

손성원 미국 LA한미은행장은 30일 "달러화 약세는 국제적인 문제이며 경제 펀더멘털로 보면 원-달러 환율은 벌써 900원 선이 깨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수출기업들, "괴롭지만 당분간 감당해야"=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기업들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원장은 최근 2~3년간 환율 하락에 아랑곳없이 기업들의 수출이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한 점에 주목했다. 국내 경제가 환율 하락의 충격파를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을 갖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초코볼을 생산해 일본에 수출하는 대영식품의 이종록 대표는 "생산성 향상으로 환율 하락을 만회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신규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지만 환율 때문에 가격이 맞지 않아 계약을 미루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2~26일 수출업체 263곳을 대상으로 한 무역협회 설문조사에서 70.4%가 원-달러 환율 920~950원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한계라고 응답했다. 응답 기업들의 46%는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질 경우 수출증가율이 연초보다 6%포인트 이상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제2 환율 쇼크 오나=미국의 포춘은 최근호에서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신용카드발 경제위기가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 신용카드 부채 규모는 91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연관된 부채 규모(9000억 달러)와 비슷한 액수다. 포춘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금융회사들의 3분기 카드 연체율은 전 분기보다 평균 13% 상승했다.

이에 따라 씨티그룹이 신용카드 연체에 대비해 22억4000만 달러의 대손충당금을 쌓았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캐피탈원 등 주요 금융회사들도 신용카드 연체용 대손충당금을 대폭 늘리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미국 금융부문 애널리스트 마이클 마요는 "신용카드 부실 문제가 터질 경우 서브프라임 사태 못지 않은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다만 장기적인 원.달러 환율 전망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JP모건체이스의 국제통화전략가인 레베카 패터슨은 "FRB의 금리 인하에 힘입어 내년 미국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하면 다시 900원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한애란 기자

◆시장 개입=환율을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헤지펀드 등에 의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또 환율이 실물경제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면 경제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럴 때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실제로 외화를 사거나 팔아 환율 안정을 꾀한다. 한국은행은 2004년 재경부 주도로 섣불리 시장 개입에 나섰다가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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