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펀드 경영권 참여 미국에선 흔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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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여진이 심상찮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또 금리를 낮추려 한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는 달러 약세를 부추겨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부채질할 것이다.”

세계 2위 회계·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투시의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퀴글리(55·사진)는 서브프라임 부실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2일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딜로이트 지역 대표자 회의와 글로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 중이다. 글로벌 기업 딜로이트가 약 300명이 참가하는 지역 책임자 회의를 한국에서 여는 것은 처음이다. 30일 신라호텔에서 퀴글리를 인터뷰했다.

-서브프라임 부실 파장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단정하기 어렵다. 관련 금융회사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의 주택담보대출을 다시 평가하고 있다. 위험도를 재평가하는 동안 미국 시장과 글로벌 기업들은 계속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여파로 메릴린치가 3분기에 22억여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스탠리 오닐 CEO가 곧 물러난다고 한다. 제2, 제3의 오닐이 나올 것인가.

“ 수습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다.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인원 감축도 추진하고 있다.”

-‘펀드 캐피털리즘(펀드 자본주의)’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적으로 연기금·사모·국부펀드 등 대형 펀드들의 위세가 날로 커지면서 생겨난 말이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경영권 참여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도 주주다. 주주로서 경영진에게 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주주들의 적극적인 자세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자본의 이동도 바람직하다.”

-그들의 단기 투자 성향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는데.

“단기 투자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는 단기 투자자도 있고 장기 투자자도 있다. 단기든 장기든 그들은 다 주주다. 그렇기 때문에 주주로서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금과 같은 공공 펀드가 기업에 투자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는 보편화됐다.”

-한국 경제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신세가 돼 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주변국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한국과 같이 수출지향적이고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는 지속 성장을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36억 인구가 모여 사는 아시아는 인접한 거대 시장이자 투자 대상이다. 꾸준한 투자를 통한 기술 우위 확보, 한류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콘텐트 개발, 눈부신 정보기술, 우수한 인력을 잘 활용하면 한국은 동북아의 허브(중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브릭스 4국(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다음으로 세계 성장을 이끌 나라를 꼽는다면.

“일정 규모의 인구와 성장잠재력을 지닌 한국·베트남·터키·멕시코와 동유럽 국가들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으로 예정된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유럽 국가들의 경제통합을 위해 추진된 IFRS가 이젠 전 세계 공통의 회계언어가 돼 가고 있다. 현재 110여 개 국가가 IFRS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도 모든 상장사가 2011년까지 IFRS를 적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IFRS가 도입되면 재무제표 작성에서 공시체계, 의사결정 등 기업의 전반적인 행태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기적으로 기업들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나 멀리 보면 투명성 제고와 자본시장 진입 비용 감소 등 긍정적인 효과가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얼마 전 비즈니스위크 조사에 따르면 딜로이트가 미국 대학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혔다, 이유는.

“우리는 직원들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 앞으로 5년 내 5만 명 이상의 전문 인력을 충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딜로이트는 전 세계에 20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보유하게 된다. 특히 우리는 여성 인력 개발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각 지역 대표의 26%가 여성이다.”

인터뷰 =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 정리=박현영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딜로이트&투시=세계 150개국에 진출해 회계·세무·경영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 인력 15만 명이 올리는 연간 매출은 200억 달러(약 18조원)에 달한다. 한국에는 1977년 진출했다. 딜로이트의 각국 회원사는 독립적인 법인이다. 한국에 5개 지점을 두고 연간 17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제임스 퀴글리=올해 6월 미국 지역 CEO에서 글로벌 CEO로 승진했다. 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태어나 유타대(자연과학 학사)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딜로이트에 입사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산림 감독관이 되는 게 어린 시절 꿈이었다. 대학에서 삼림학을 전공했으나 전공자 104명 중 3명만이 삼림과 관련된 일자리를 얻었다는 얘길 듣고 경영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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