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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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3.실종○49 몇달 학교를 다니니까 쉬운 영어 몇마디는 지껄일 수 있게 됐거든.그때부턴 일본이나 중국.필리핀 같은 동양에서 온 아이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어.그게 좋은 점도 있었는데,그게 뭐냐믄…놀고 나서의 뒷소리가 내 귀에까지 돌아오지 않는거야 .한국애들끼리는 잘 놀고난 뒤에 어쩌구 저쩌구 말들이 많거든.그러는 건 정말 질색이라니까.아빠하고 지니가 여행을 떠나거나 하면 아이들이 우리집으로 몰려왔어.고스톱을 치지 못하는 거하나만 빼면 그런대로 괜찮았지.어른들이 보는 ××× 비디오 테이프를 갖다가 함께 낄낄거리면서 보기도 하고(그건 영어를 몰라도 되는 테이프란 말이야),그래 물론 남자애들도 있었지,마리화나를 먹기도 하고…그러다가 나중에는 코카인이라는 걸 해보기도 했어. 생기긴 밀가루처럼 보이는 하얀 가룬데 사실 비싸지만 않았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이 했을 거야.그런데 한 번 하려면 백달러가 넘고 그러는 거야.어쨌든 누군가가 코카인을 구해오면 우리는 그걸 빨고 세상사를 다 잊을 수가 있었어.어쨌든 그랬다구정말이야,내일이구 미래구 그런걸 다 잊을 수가 있었다니까.
1g짜리 한봉지라야 얼마 안되거든.1g이 얼마큼인지 알지? 그걸 바닥에 펴놓은 거울의 표면에다 살짝 뿌린 다음에,면도칼을이용해서 그 하얀가루를 길고 가늘게 늘어놓는 거야.그러면 거울위에 하얀 선이 몇개 생기는 거야.한쪽에서는 빳빳 한 지폐를 둘둘 말아서 대롱을 만들고 있지.응?아 그 대롱으로 흰 가루약을 빨아서 골에까지 땡기는 거지.입이 아니라 코끝에 대롱의 한쪽을 대고 흐읍 하고 빨아들이면 흰가루가 골까지 가서 닿게 되는 거야.그 다음엔 가만히 기다리는 거 지 뭐.내가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떻게 변할 건지 기다려보는 거지 뭐.
여행이 뭐냐구?약효가 오르면 각자 어딘가로 떠나는 거거든 어떤 때는 꿈을 따라 환상속으로 가고,어떤 때는 오히려 나쁜 기분이 확장돼서 파티를 망쳐버리기도 하는 거거든.우리는 약을 먹고 함께 떠들어대기도 하고…어떤 때는 숨죽이고 포 르노 테이프를 보기도 했고…또 어떤 땐 각자 자기가 차지한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기도 했어.
그래 어떤 땐 남자애하고 꼬옥 껴안고 있기도 했지만,그치만 약에 취했을 때는 정말 기운이 없다니까.무슨 짓이든 할 힘이 없어진다니까 그러네.메이크 러브는 약효가 가신 뒤에나 하는 거지.뭐긴 뭐야,어떻게 메이크 러브가 뭔지를 모르니 .말도 안돼. 어쨌든 나중에는 돈을 말아서 코로 약을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프리베이스로 약효를 맛볼 때도 있었어.그게 뭐냐믄…약을 불에 태워서 그 연기를 마시는 거야.새로 개발된 방법인데 약효 면에서는 코로 빨아들이는 것보다 몇배나 세진다는 거 였어.
그렇지만 프리베이스 식으로 먹기 위해서는 코카인 전문가가 있어야 가능했지.그래야 쿠킹(흰가루를 물에 타고 가열하거나 해서콩알만한 고체를 만들어 내는 짓)이 가능했기 때문이야.한번이라도 프리 베이스로 코카인을 해본 애들은 다음에도 반드시 그 식으로 코카인을 취하기 원했어.그만큼 환희와 절정의 기대치가,약을 코로 먹는 것하고 입으로 연기를 먹는 것이 크게 다른 거였다. 뭐랄까…어쨌든 그러다가 제정신이 들면 정말이지 막막해지는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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