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을 향해 몸을 던져라" 17대 대선 뜨는 '여성 공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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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진수희ㆍ이혜훈ㆍ나경원 의원, 대통합민주신당 박영선ㆍ김현미ㆍ서혜석 의원(윗줄 좌로부터)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여성 공격수 진용이 갖춰졌다. 드라마 대조영과 태왕사신기의 여자 호위무사에서 힌트를 얻은듯 ‘투사’의 이미지가 남성 의원에서 여성 의원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강한 당성(黨性)에 기반을 두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상대 당엔 ‘천하의 몹쓸 공격수’로 미움을 받지만 당내에선 ‘일등 사수’로 캠프를 엄호한다. 공격의 강도는 현재 신당이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최상의 수비는 최강의 공격’이라는 의미에서 한나라당의 수비수도 이에 질세라 공격 모드로 전환해 그동안 갈고 닦아온 내공을 뿜어내고 있다.

◇‘BBK’로 끝낸다=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BBK 주가조작 의혹’에 전투력을 집중하고 있다. 박영선(재경위)ㆍ김현미(정무위)ㆍ서혜석(정무위) 의원은 정동영 후보의 최측근으로 각각 비서실장, 대변인, 수행단장을 맡고 있다.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이 최대의 화두로 오르자 이와 관련된 재경위와 정무위 소속 여성 의원들이 전면에 나섰다. 가장 치열한 전쟁터의 중심에 선 것이다. 난해한 BBK 의혹의 ‘최고통’으로 꼽히는 박영선 의원은 재경위 국감에서 이 후보의 BBK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면서 탈세 의혹을 제기했다.

서혜석 의원도 정무위 국감에서 BBK 관련 증인신청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에 한나라당은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의혹을 주장한 신당의 박영선ㆍ서혜석 의원에 대해 각각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겠다고 경고할 정도다. 김현미 의원은 주가 조작 사건을 일으킨 BBK 전 대표 김경준씨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가 부실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분야별 분산 공격=한나라당 여성 공격수 3인방은 진수희(정무위)ㆍ이혜훈(재경위)ㆍ나경원(법사위) 의원이다. 이들은 BBK 주가조작 의혹, 금산분리법, 정동영 후보 처남 주가조작 의혹을 두고 분야별 공격을 퍼붓고 있다. 진수희 의원은 신당의 박영선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며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중점적으로 마크하고 있다. 진 의원은 10월 초 대통합신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점거한 한나라당 의원들을 뚫고 증인채택 안건을 기습 상정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병원에 입원하는 등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친이(親李)’ 직계는 아니지만 이혜훈 의원도 서울시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아 이 후보에게 적극 힘을 실어주며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금산분리 정책은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며 정 후보 측의 의견에 맞서며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의 ‘입’인 나경원(법사위) 의원 역시 정 후보 처남 부부의 주가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왜 대세인가=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배출된 여성 의원은 39명.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전체 의원의 13%로 16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 (5.9%.16명)의 두 배가 넘는다. 2004년부터 본격적인 여성 정치인 시대가 열렸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또 여성 의원의 역량 강화와 국민의 비리 근절의 염원이 여성 의원으로 투영됐다는 분석이다. 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이번 대선 이슈가 ‘비리 의혹’으로 다져진 만큼 남성 의원보다는 도덕적이고 청렴한 이미지인 여성 의원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기존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여성 의원들의 논박(論駁)이 이들을 더 부각시켰다”고 덧붙였다.

서강대 이현우(정치외교학) 교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맞물려 여성 정치인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된 점을 들었다. 이 교수는 “비례대표제와 지역구 할당으로 여성 의원들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이들은 이슈 전면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역량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며 “상대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거센 여풍(女風)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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