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68) 방파제 밑에 하나는 쭈그리고 앉고 둘은 서서 그렇게 이야기를 낮추고 있었다.
멀리 경비원 하나가 감기라도 걸렸는지 기침을 하면서 지나갔다.
태성이가 말했다.
『그렇게 해서,그자들을 가만둘 수는 없으니 이쪽에서도 패를 모아 작당을 하면 안 될 것도 없지 않느냐 그말 아닌가.』 『아이구 속터져! 말귀 한번 빠르네.』 『그런데,그렇게 뼈있는 말은 이렇게 내놓고 하는 게 아닐세.』 고서방이 또 웅얼웅얼거렸다. 『그리고 말인데… 그런 놈들이라는 게 자고로 바로 제 도끼에 발등 찍히는 거 아니던가.』 『뭐 어째?』 성미 괄괄한장씨가 목소리를 낮추며 이를 간다.
『아,안 그래.나서서 걱정할 것도 없지 않어.그놈이 제 발등제가 찍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거 아닌던가.』 『제돈 칠푼만 알고 남의 돈 열냥은 모르는 놈이 있다더니 바로 여기 있었네.』 『자,자,이러지들 말고.』 태성이가 목소리를 낮췄다. 『여보게.자고로 꼴 보고 이름짓고,치수 맞춰서 옷마른다지 않던가,사람을 보고 그런 말을 해야지.자네가 그걸 무슨 수로 다 상대하겠다는 건가.이게 무슨 훈수 장기 두는 것도 아니고,만약 그놈이 되잡고 일어서서,당신이 뭔데 생사람을 잡소 하고 되잡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 망신은 자네가 아닌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셋은 잠시 말을 끊고 어둠을 바라본다.밤이 깊어서 언덕 위의 일본인 숙소들에도 불빛이 띄엄띄엄하다.태성이가 조용조용 말했다.
『그리고 말인데,임금님 무덤에 신하 귀신들 모여들듯 그렇게 떠벌려서 될 일도 아닌데,자네는 그저 막장에 들어갈 때도 그 소리,밥 먹으면서도 그 소리던데,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네.
』 『아암,아암,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 나는 거여.』 고서방이맞장구를 치자,장씨가 어둠 속에서 발길질하는 흉내를 냈다.
『명문 집어 먹고 휴지똥 쌀 놈 같으니.』 『그게 무슨 소리여?』 『명문이란 자고로 문서를 일컫는다 그말이여.말하자면 땅문서 집어처먹고 종이똥 싼다 그말이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