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13.졸업-모녀와의 삼각관계 코믹하게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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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마이크 니컬스감독이 1967년에 선보인 이 영화는 키가 작고코만 큰 이상하게 생긴 더스틴 호프먼이란 배우를 유명하게 만들었고,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가 영화의 배경이 아니라 오히려 멍청한 표정의 호프먼을「타블로 비방」(tablea u vivant)형식으로 이용해 멋진 리사이틀을 벌인 코미디였다.일류대학을모범생에 육상선수로 졸업하고나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때문에 한숨만 푹푹 쉬는 스물한살의 부잣집 얌전한 아들,쇼펜하워만큼이나 염세적이고 권태로운 삶을 앞에 놓고 할일이 없어 잠망경을 쓰고축 늘어진 벤저민(더스틴 호프먼)이다.그에게 인생의 첫 강의를유혹으로 가르치는 중년의 알콜중독자 로빈슨부인(밴 맹크로프트)의 등장으로 참으로 한심하게 웃기는 상황이 시작된다.칫솔 하나를 들고 호텔로 들 어가 첫 키스를 하고난 다음 로빈슨 부인이참았다 내뿜던 담배연기는 연상의 여인과 어색한 첫 경험을 거치는 기막힌 통과의례로 그려진다.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캐서린로스)과의 끔찍한 연애는 그당시 우리나라 유교적인 윤리관으론 도저 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모두들 아무렇지도 않게받아들였던 까닭은 아마도 영화속의 상황이 너무나 황당무계했기 때문에 적용할 도덕적 기준이 없어서였으리라.만일 엄마와 딸 두여자가 모두 임신해 벤저민의 아이를 낳았다면 그 집 안의 족보가 얼마나 복잡해졌을까.
자칫했다가『즐거운 사라』꼴이 됐을지도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60년대를 대표하는 걸작들가운데 하나로 만들어 놓은 것은 찰스웨브의 원작부터가 웃느라고 심각해질 겨를이 없을 만큼 숨찬 대사의 속도감때문이다.여기에『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와조지프 헬러의 해괴망측한 소설『캐치-22』까지 영화로 만들었던마이크 니컬스 감독의 솜씨 덕택이었으리라.
마지막에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납치하고는 추적자들이 드라큘라라도 되는 듯 십자가를 휘둘러 물리치고 버스에 태워 달아나는 장면은 마크 레스터의『멜로디』에서 국민학교 아이들이 몰래 결혼하고 철로 보수차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만큼이나 신나 는데 그들에게 내일부터 어떤 현실이 닥칠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영화이니까.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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