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은인 영부인 낸시 만나다니' 24년만의 '아름다운 재회'

중앙일보

입력

미주중앙"그녀는 제게 두번째 삶을 주신 생명의 은인입니다."

1983년 11월 14일 백악관 앞.

수십여명의 기자들은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평소였다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부가 주인공이었겠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26일 레이건 도서관에서 전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과 24년만에 해후한 이길우씨(미국명 브렛 핼버슨)가 환하게 웃고 있다. 대형 액자에 실린 사진의 왼쪽 밑이 1983년 당시 4살난 이씨 모습. 〈시미밸리=백종춘 기자>

한국에서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온 꼬마 손님 2명이 기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한국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였다. 4살과 7살이던 이들은 낸시여사가 한국 방문 도중 딱한 사정을 듣고 수술을 해주기 위해 미국으로 데리고 왔던 것.

당시 찍힌 AP의 사진에서 17시간의 긴 여행길이 피곤했던 듯 브리핑을 하고 있는 레이건 대통령 옆에서 한창 하품을 하고 있던 코흘리개 고수머리 사내아이.

이길우(미국명 브레트 핼버슨.28)씨가 '생명의 은인' 인 전 영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와 24년만에 재회했다.

26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만난 두사람은 얼싸안고 그때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기에 바빴다.

낸시 여사는 이제는 어엿하게 성장한 이씨를 보고 "이렇게 컸냐"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이씨는 "제 영웅이십니다. 감사합니다"며 낸시여사의 손을 맞잡았다.

그때는 너무어려 하지 못했던, 그러나 언젠가는 꼭 만나뵙고 말하리라 다짐했던 한마디였다.

이씨는 심장에 구멍이 뚫려 뛸 수 조차 없었던 선천성 심장병 환자였다. 당시 같은 심장병을 앓고 있던 안지숙(31)씨와 함께 낸시 여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온 뒤 뉴욕에서 치료를 받았고 완쾌된 후 두사람 모두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지내던 그가 낸시여사와 조우하고 싶다고 결심한 것은 수개월전.

인터넷을 통해 기념도서관 연락처를 찾은 그는 직원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고 이를 전해들은 낸시여사가 흔쾌히 허락, 이날 열린 전 국무장관 토니 스노우의 강연 오찬 행사에 초청받을 수 있었던 것.

낸시여사와 상봉 후 그는 “낸시 여사가 주시던 젤리 사탕과 백악관의 빨간 카페트가 당시 기억의 전부였다”며 “이제 진정한 추억을 가질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받은 은혜를 자신도 베풀고 싶다는 그는 낸시여사가 운영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단’에 작은 힘이나마 동참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또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친부모를 찾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씨는 “한국에서 대해선 할머니 농장에 함께 갔던 일, 아파트 정도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며 “이제 앞으로 인생에선 한국에서의 잊었던 기억을 찾는 일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USA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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