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 나이 670살 '실버 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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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서 호텔리어로 은퇴
≫ "늘 푸르게 살자"

공연에 앞서 삼성동 코엑스 지하무대를 점검하는 배정우 단장.

강남 실버밴드를 이끄는 드러머 배인성(본명 배정우)씨를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러나 '엄토미와 그의 악단' 은1950년대에는 날렸다. 올해 78세의 배정우씨는 48년 엄토미와 그의 악단에 드러머로 입문하면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 18세, 엄토미 악단의 막내였다. 뒷날 한국 경음악계를 이끈 호화 멤버들은 모두 거기 있었다.

본명이 최치정인 길옥윤(기타)씨,작곡가로도 유명한 손석우(기타)씨,그리고 노명석(아코디언), 송민영(트롬본), 박춘석(피아노), 전오승(베이스)씨 등이 당시 엄토미 악단의 기라성들이었다. 전란 후 미8군 무대와 극장 쇼 무대 그리고 방송국 경음악단을 전전하며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경음악계를 개척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배정우씨는 66년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전속 악단장으로 있던 게 인연이 돼 호텔 맨으로 전신했다. 당시 김용산 극동건설 사장의 권유가 동기가 됐다.

그의 호텔 인생은 81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민생활 10년 만에 호텔 맨에서 은퇴한 그는 처음으로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음악인생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한 그는 역이민을 선택했다. 귀국과 동시에 옛 음악 동지들을 규합해 만든 게 청송회다. '늘푸르게 살자' 는 이 원로 음악인들 모임에는 문대한노명석엄토미씨가 있다. 노씨와 엄씨가 작고한 지금, 배씨가 부회장으로 모임을 이끌고 있다.

98년부터 강남구청이 이 원로 음악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했다. 강남 실버밴드가 출범한 것이다. 모두 60대 나이의 퇴역 음악인 11명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강남 구민회관과 복지회관 등이 연주 무대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호응이 크자 6월부터 삼성동 코엑스 빌딩 지하 1층에 상설무대를 마련했다. 매주 월요일 낮 12시 반이면 이들의 농익은 연주가 어김없이 반원형 홀에 울려 퍼진다. 점심 휴식시간을 이용해 모여든 젊은이들은 환호와 박수 갈채로
이들을 맞이한다.

배씨는 말한다. "음악이 좋아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 내 인생에 무슨 여한이 있나요. 단지 며칠 전 허리 수술을 해 지휘봉을 넘겨 준 게 아쉽긴 하지만. 저 조용한 멜로디 '그대 그리고 나' 는 언제 들어도 좋지요."

김성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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