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81. 이길여 회장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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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뇌과학연구소를 방문한 노벨상 수상자 리차드 언스트 박사, 이길여 회장, 이철옥 고문(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했다.

길재단과의 계약이 모두 이뤄졌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그게 제대로 실현되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 순간의 판단 잘못이 UC얼바인에서 그런 대로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영구직 교수 자리를 잃고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조건을 다 믿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이길여 회장의 주변 사람들 중 일부가 나를 혹평하며 영입을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있는 지인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를 그렇게 믿다가는 큰코 다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2년간 지켜보기로 했다. UC얼바인 교수직을 정리하지 않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마침 UC얼바인에서 7년 만에 찾아온 안식년이었다. 나는 안식년을 이용해 2004년 중반부터 1년 동안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지내며 연구소 기자재 구입 등 정지작업을 했고, 뇌과학연구소 건설 진행 과정을 지켜보았다. 길재단의 뇌과학연구소 설립 의지가 진짜인지도 알아봤다.

그 다음 1년은 UC얼바인에서 무급 휴직을 받았다. 그렇게 2년간 지켜보자 이 회장의 뇌과학연구소 육성 의지가 피부로 느껴졌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UC얼바인에 사표를 냈다. 그때가 2006년이다. 남들은 쉽게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지만 실상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고 나는 뇌과학연구소로 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뇌과학연구소행은 내 인생의 마지막 모험이 될지 모른다. 아무 것도 갖춰진 게 없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상황에서 뇌과학연구소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나도 알았고, 이 회장과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몰랐을 리 없었다. 이 때문에 좋은 조건들을 단번에 버리고 미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도중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나는 르네상스호텔에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와 김성호 미국 UC버클리 교수를 만나 미국 록펠러대 같은 명문 대학을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록펠러대는 뉴욕 중심가에 있는 대학원대학으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최고 대학이다. 연구 및 교수 생활을 한 사람이면 한번 가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얘기가 ‘내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잘못 알려져 정·관계에 소문이 쫙 났다. 내가 돌아간다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됐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영입했던 로버트 로플린 전 KAIST 총장이 미국으로 돌아가느니 마느니 하며 시끄러울 때였다.

그런 해프닝 속에서도 뇌과학연구소 건설 현장에선 중장비가 힘차게 땅을 파고 건물을 짓고 있었다. 수백만, 수천만 달러짜리 기기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나는 2004년 1월 UC얼바인에서 ‘올해 최우수 교수’로 뽑혔다. UC얼바인 교수 2500여 명 중 그런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은 매년 한 명뿐이다. 앞서 최우수 교수상을 받은 20~30여 명 중 두 명이 노벨상을 타는 전통을 자랑하는 상이기에 나는 더욱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그 상을 받기 직전에 뇌과학연구소 건설과 영입 제안이 들어왔었다. 최우수 교수상을 받으면서 ‘이제 내가 UC얼바인을, 그리고 미국을 떠나 조국을 위해 일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역시 절정기에 떠나는 것이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의 생각이 현실화됐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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