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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김신일의 교육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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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얼마 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 후보는 한국교총 주최 교육정책 토론회에서 “김 부총리와 과거엔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는데 요즘은 통 만나지 않고 있다”며 “그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후보 측근은 “김 부총리는 1990년대부터 지난해 9월 부총리가 되기 전까지 이 후보의 교육 자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시절에 이 후보의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원 등에서 이사를 맡아 도와 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1941년생으로 66세 동갑내기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일 때 출입기자로서, 김 부총리는 현재 교육담당기자로서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가난한 시절을 보낸 두 사람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 잘 통(通)했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사람의 교육관은 정반대다. 이 후보는 “교육 개혁의 핵심은 자율”이라며 대입 자율화와 교육부 축소를 강조하고 있다. 우수 인재 교육 강화를 위해 자율형 사립고도 100개 만들겠다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어떤가. 올 봄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홍보 ‘전국 투어’를 하더니, 특목고를 공교육을 망치는 사교육 주범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교육부 조직도 더 늘렸다.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달라진 입장이 그중 하나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2월 서울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김 부총리는 명망 있는 학자였다. 그가 쓴 『교육사회학』은 서울대 사범대생뿐 아니라 전국의 교사 지망생들에게 필독서였을 정도다. 한국교육사회학회·한국평생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해 학계 활동도 왕성했다. 30여 년간 강단에 섰으니 제자도 숱하게 키웠다. 하지만 부총리를 13개월 남짓하면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덕망은 땅에 떨어졌고, 친구는 물론 ‘교육적 동지’인 학계와 제자도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정권 말기에 교육부처럼 일이 쏟아지는 부처도 거의 없다. 3불정책→대입 내신 반영률 파동→로스쿨 총정원 진통에 이어 오늘 발표하는 외국어고를 포함한 특목고 체계 개편안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이슈가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김 부총리도, 공무원들도 오락가락해 국민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그가 교수 시절 ‘교육은 자율이 핵심’이라고 늘 강조했다”며 “그냥 평생 학자로 남았으면 좋았을 분이 ‘자리’를 옮기더니 망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 총장들은 그를 청와대의 ‘교육 로봇’으로 표현했다. 당초 내년 3월 차기 정권 때 하려던 개별 로스쿨 선정을 1월로 앞당긴 것도 김 부총리가 청와대 컨트롤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암벽등반을 할 정도로 건강한 김 부총리는 요즘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다. 안타까운 생각에 주말 그의 책을 읽고 또 읽어 봤다.

 “교육 문제에 관한 논의가 전문학자나 정부 관료들에게 독점되면 한 나라의 교육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교육정책을 대통령 임기와 연계시키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을 임기 내에 열매를 따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서울대 김신일 교수의 교육생각』 2006년 2월·학지사)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하지만 현재 ‘부총리 김신일의 교육생각’은 책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정권 말기 대학에 내신 비중을 높일 것을 강요하고 무리하게 로스쿨과 특목고 정책을 추진하며 익지도 않은 열매를 따려 하기 때문이다. 평생 쌓은 명망이 부총리직으로 무너져 버린 그의 현실이 정말 안쓰럽다. 친구도, 교육적 동지도 모두 잃는다면 남는 게 무엇이겠는가. ‘가문의 영광’은 공허하다. 옛 생각을 되돌리시라.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