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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기자와도란도란] ‘버핏’과 반대로 간 개인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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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07년 10월 25일. 한국에 온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한국 증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 말 한마디에 코스피지수가 40포인트 넘게 올랐다. 하루 새 22조원이 생겨났다. 워런 버핏의 힘이다. 전설적인 투자가답다.

이날 낮 12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다들 버핏이 어떤 주식을 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4년 전에는 한국 시장이 너무 쌌기 때문에 개인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한국 주식으로 채웠다고 했다. 2005년에는 개인 돈 1억 달러를 한국 주식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때 샀던 종목이 기아차·신영증권·현대제철(옛 INI스틸)이었단다. 그러나 지금은 다 팔고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한 개의 기업이 뭔지 맞혀 보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회견이 끝난 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접속해 봤다. 버핏의 언급에 기아차가 상한가로 치솟았다.

한참 기사를 쓰고 있는데 타사 기자가 물었다. 기자회견 중 버핏이 여전히 갖고 있는 한 종목이 뭔지 말했느냐고. 통역도 밝힌 적이 없었고, 내가 봐도 분명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버핏이 거론한 종목은 모두 과거 한때 보유했던 것들이다. 자신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차보고서에 밝힌 포스코를 빼면 그렇다. 버핏 정도의 인물이 투자 기업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며 시장에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 기자가 말했다. 지금 메신저로 그 하나 남은 기업이 에스원이라는 내용이 돌고 있다고. 에스원 주가를 확인해 보니 10% 이상 오르고 있었다. 이 회사 주가가 10% 이상 움직인 것은 8월 20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은 코스피지수가 93.2포인트(5.69%) 오른 날이다. 이달 들어 26일까지 에스원의 주가가 하루 ±5% 이상 움직인 날은 25일을 포함, 단 이틀에 불과했다.

기자회견에서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버핏은 투자 비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주식을 살 때는 내가 그 기업을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사라고 답했다. 차트·거래량·증권방송에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놀랍다. 그날 투자자들은 정확히 버핏과는 반대로 했다. 기업 가치는 따질 틈도 없이 그의 한마디에 우르르 몰려갔다. 기아차와 에스원의 주가는 다음날 하락세로 돌아섰다. 버핏의 투자 원칙은 단순하다. 기업 가치를 보고 투자하고, 쌀 때 사서 비싸게 팔며, 절대 원금을 잃지 않는 거다. 쉽다. 그러나 누구나 알면서 누구도 버핏이 되지 못한다. 결국 실천이 문제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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