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바로 비곗덩어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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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3면

모파상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디서 그런 독특한 아이디어들이 솟아나는지 감탄할 따름이다. 특히 짧고 간결한 단편은 그의 허구에 대한 역량이 최고치에 도달했음을 확인케 한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재주를 보여 사실주의의 거장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사사했는데, 모파상의 경우에 감히 ‘청출어람’이라는 표현을 써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와 존 포드의 ‘역마차’

그의 작품은 크게 두 종류다. 당시 파리 부르주아들의 허위를 공격하는 풍자극이 그 하나고, 또 다른 종류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의 원인 모를 공포와 불안에 대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곧, 반(反)부르주아 풍자소설과 일명 ‘검은 소설’이라는 공포물은 모파상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두 개의 큰 바퀴다.

모파상은 1870년 보불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위선을 철저히 경험했고, 또 부모처럼 미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평생 사로잡혀 살았는데, 바로 여기서 풍자소설과 검은 소설이 탄생했다. 그는 결국 43세에 미쳐 죽었다.

존 포드는 할리우드 웨스턴 장르의 거장이다. 서부극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절정과 퇴락의 순간마다 그의 행적이 그려져 있다. 평생 서부극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부의 총잡이들이, 혹은 백인 기마병들이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게 서부극의 표면이다.

그래서 우리처럼 백인문화 외부의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수용하기 곤란한 장르가 서부극이기도 하다. 만약 존 포드가 유색인 타자를 죽이는 단순한 이야기만 반복했다면 영화사에 한 거장으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는 제도권에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에 대한 싸늘한 풍자가 넘쳐난다. 존 포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아웃사이더들이다. 모파상 식의 반부르주아 풍자가 바로 존 포드의 웨스턴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의 출세작 ‘역마차’(1939)는 아예 모파상의 단편 ‘비곗덩어리’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영화사 측은 제작 관련 크레딧 어디에도 모파상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일련의 승객들이 역마차를 타고 목숨을 건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의 뼈대는 같은 것이다. 여행객의 신분과 역할까지 비슷하다.

모파상의 역마차에는 귀족·재벌·사업가·종교인들이 타고 있는데, 여기에 오점처럼 앉아 있는 여성이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이 붙은 창녀다. 프로이센의 국경을 넘을 때, 경멸하듯 바라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온갖 감언이설로 그녀에게 접근한다. 국경수비대의 프로이센 장교가 역마차를 지나가게 하는 대가로 창녀와의 하룻밤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존 포드의 역마차에도 창녀가 타고 있다. 별로 환영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서부의 무법자 링고(존 웨인)만이 유일하게 말을 건다. 하지만 오점처럼 차별받던 그녀는 극이 진행될수록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제시된다. 돈 많다고 뻐기던 은행가 같은 출세한 사람은 오히려 파렴치한 범죄자로 드러나는 식이다. 제도권의 출세한 사람들이 알고 보면 위선자라는 감독의 냉소주의는 모파상의 태도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비곗덩어리’에서 창녀는 어떻게 됐을까? 역마차는 국경을 넘어가고 있고, 창녀는 역마차의 구석에서 울고 있다. 일행들은 다시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국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 다 알게 됐을 것 같다.


한창호씨는 미술과 몸을 섞은 영화 이야기『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로 이름난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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