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산티아고 가는 길 800km … 나도 찾고 신도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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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은행나무,
368쪽,1만원

피레네 산기슭에 있는 생장피에 드 포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굳이 번역하자면 ‘산길 끝의 성 요한’ 쯤이 되겠다)의 프랑스 중세도시에서 출발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의 길이 그 유명한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다. 카미노는 ‘길’을 뜻하는 스페인어이고 산티아고는 야고보와 같은 이름이어서 ‘야고보의 길’이라고도 한다.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예수가 죽은 뒤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 걸어와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헤롯왕에게 죽임을 당한다. 친지들이 야고보의 시신을 수습해 돛도 사공도 없는 돌배에 태워 보냈는데 놀랍게도 일주일 뒤 스페인에 도착했다는 거다. 제자들은 시신을 콤포스텔라에 묻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는데 9세기에 한 수행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단다. 스페인 국왕은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으며 야고보를 스페인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의 무덤을 보기 위해 찾는 이 길에 어느 날 30대 남자가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독일에서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자 MC다. 너무 잘 나가다 보니 “휴식!”이라 외치는 몸의 호소를 무시하고 일에 몰두하다 담낭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화나는’ 경험을 한 뒤 자신에게 잠깐이라도 ‘작전 타임’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일이었다.

직업이 ‘웃기는 사람’인 만큼 그의 순례는 ‘우습게’ 시작한다. 언제든 그만두고 돌아갈 준비가 돼있는 ‘농땡이’ 순례자였다. 걷다가 힘들면 거리낌 없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순례자 숙박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인간적인 만남’은 무좀이 옮을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편안한 호텔을 찾아 다닌다.

“길에서 조금씩 벗어날 때마다 주위에 나비가 보이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순례길에 제대로 들어서면 갑자기 온갖 색의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것이다.”

이런 놀라움도 그에겐 스페인 관광공사의 술책이 아닌가 의심받는다. 하지만 걸음 수가 늘어나면서 그의 생각은 달라진다. 점점 산티아고에 가까워질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누구나 길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이 길이 사람을 그 어느 때에 이르게 하죠.” 다른 순례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유치한 소리라고만 여기던 그에게도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다. 포도밭 한가운데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이것은 “신과의 아주 인격적인 만남”이면서도 나 자신과의 대면이었다.

야고보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힘든 여정 속에서 신을 찾고 나 자신을 만나며 깨달음을 얻는 길인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길은 힘들지만 놀라운 길이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며 초대다. 이 길은 당신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비워버린다. 그리고 당신을 세운다. 기초부터 단단하게.”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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