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中企자금난 몸살-돈가뭄 겪는 현장 긴급점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안경렌즈 초음파세척기를 생산하는 부평소재 K社의 L사장은 거래은행을 찾아가 상업어음의 할인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대출담당자는 부동산담보물이 부족한데다 발행어음 자체가 중소기업이 끊은 것이라 믿을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은행측이 지점들의 상업어음 할인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란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L사장은 할수없이 사채시장을 찾아가 월 2%가 넘는 고리를 물면서 돈을 돌리고 있지만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면서 요즘 잠을 제대로 이룰수 없을 정도가 됐다.월말자금에 추석자금 준비까지 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더이상 사채를 쓰다간 회사가 통째로 넘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처가 부동산까지 은행에 내밀었다고 한다.
L사장은『문민정부 출범이래 한때 어음결제기일이 3개월미만으로단축되는듯 했으나 올 2분기이후부터는 1백일짜리는 물론 심지어6개월이상의 어음마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며『단기운영자금을구하기위해 고리대금업자들의 유혹을 뿌리칠 형 편이 못된다』고 하소연했다.
올 2분기 중소기업 판매대금의 결제조건중 91일이상 어음발행을 해주는 것이 전체의 68.9%를 차지해 작년동기보다 8.8%P나 상승한 것으로 中企協 조사결과 나타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표참조〉 이같이 돈가뭄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납품결제대금 지연.원자재가격 오름세까지 겹쳐 中企 자금사정은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특히 작년 실명제실시후 긴급 방출됐던 중소기업 경영안정자금의상환만기가 닥쳐왔을 뿐만 아니라 내달엔 추석마저 끼여있다.단기운전자금을 조달하려는 중소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정점을 이룰 전망이나 주변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中企協공제조합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그나마 공제기금사업부에서돈을 대출받아 자금부족분을 땜질하고 있으나 지난달부터 대출신청회사가 몰려 이 자금마저 거의 바닥나 있는 상태다.
中企協은 작년 1~7월의 공제기금 대출액은 총 1천8백15억원이었으나 올 같은 기간에는 2천4백억원에 달해 26일 현재 대출재원 잔고가 30억원밖에 남지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실명제 직후보다 지금이 자금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전기부품과 플라스틱 가공업체등의 형편은 더욱 어렵다.
산업용 전기부품 메이커인 건흥전기는 자사대리점이 부도를 내고문을 닫아버리자 1억원규모의 납품대금이 물려 자체 운전자금마저빠듯해지고 있다.
플라스틱가공업체들은 원자재인 각종 합성수지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뛰고 제품가격을 제때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원료공급업체들이 대금결제기간을 조금씩 단축해 그만큼 돈을 회전시키는데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수원소재 S화학 K사장은 회사근무를 제쳐두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거래업체 임원들을 만나 판매대금을 조기에 결제해줄 것을 요청했다가 시원한 대답을 못들어 내달부터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李炳洛플라스틱가공협회 관리부장은『일부 합성수지값은 연초보다 최고 50%씩 오른데다 거래조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3개월후에는 이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高允禧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