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도 뻥튀기 수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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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정부들어 한동안 뜸했던 경찰의 뻥튀기수사와 편법수사가 되살아나고 있다.
26일 서울경찰청이 발표한 「10대 소녀 폭력단」사건내용은 뻥튀기수사의 전형적인 보기다.경찰은 『여고생 폭력서클「여자 구종점파」일당 9명을 검거했다』고 거창하게 발표했으나 실은 같이몰려다닌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뿐만 아니 라 조직을 벗어나려던 한 명에게 물고문까지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었으나 피해자도 부인하고 있고,경찰 스스로도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는 물고문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았다.또 경찰은 이들 10대 소녀들이 8개월간이나 남자폭력배들과 집단혼숙을 해왔다고 주장했으나 가족들은 가출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경찰도 영장신청때는 혼숙내용을 기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9명중 1명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되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됨으로써 소녀들사이의 단순폭력사건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지방의 한 작은 경찰서 발표도 아니고 경찰의 간판격이라할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의 발표내용이 이렇듯 뻥튀기였다니 뭐라고 표현할 적절한 말조차 찾기 힘들다.경찰은 과연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뻥튀기뿐 아니다.요즘 경찰은 특수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긴급구속을 확대 적용해 피의자를 영장없이 마구 연행,수사하고 있다.서울 한 경찰서의 경우 지난 6월부터 8월24일까지 피의자 1백29명중 1백17명(91%)을「긴급구속 」으로 연행해 조사했다.헌법에는 체포.구속.수색은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重罪를 범한 혐의가 있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긴급구속을 허용하고 있으나 형사소송법은 이의 남용을 막기위해 그러한 경우라도「긴급을 요하여 판사의 영장을 발부받을수 없을 때」라고 다시한번 제한규정 을 두고 있다.그러나 경찰은 대법원이 지난 3월 영장없는 구금상태에서의 조사가 위법이란 판결을 내리자 특수한 경우에 적용해야할 긴급구속제도를 연행및 수사의 일반적인 수단으로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탈법이며 편법적 수사다.
경찰도 경찰이지만 검찰도 역시 문제다.현재 경찰은 엄연히 검찰의 지휘.감독아래에 있다.그렇다면「10대 소녀 폭력단」사건과같은 뻥튀기발표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경찰이 검찰에는보고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검찰도발표를 묵인했던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어느 쪽이든 검찰도함께 부끄러워 해야할 일이다.
긴급구속의 남발엔 검찰에 더 큰 책임이 있다.긴급구속시에는 사전 혹은 직후에 검찰에 보고하게 돼있기 때문이다.이른바 문민시대에 수사기관의 인권의식은 오히려 옛날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 절로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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