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오늘의 한국문학 현황과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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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민주화와 문민정부 탄생에 일정한 몫을 담당했던 80년대의 한국문학이 90년대에 들어와 그 감동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이념과 갈등,대립의 연대를 헤쳐나온 한국문학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분단극복,남북문화의 교류,한국문학의 세계 화등 90년대 우리 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짚어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편집자註] 사회=90년대는 脫이데올로기 시대라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80년대에 이념해체작업이 진행됐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이 시기가 이념의 열정기였던 것 같습니다.사회주의 문학과 함께 북한문학이 들어온 것도 이 시기였지요.
김병익=북한문학이 제한적으로나마 우리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니까 7~8년정도 되는 셈입니다.북한의 문학작품들은 일정하게 북한 주민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시켜준 측면도 있지만 예술적으로 본다면 교조주의적 감동문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김영현=그런데 최근엔 북한문학도 金日成 우상화작업에서 벗어나소박하나마 휴머니즘.인간해방문제.삶의 문제에 접근하려는 노력이보입니다.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려는 작가적 노력이 엿보인다는 말입니다.
김원일=북한문학은 체제순응의 문학이자 黨의 문학이었습니다.남한에는 군부독재 타도에 기여한 반체제작가가 있지만 북한엔 반체제문학이란 게 없습니다.그만큼 사회적 책무에 무능했다는 비판을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우리사회에도 북한문학이 공개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김주연=저는 단계적인 북한문학의 개방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학원이나 대학 국문과 수준에서 먼저 개방하고 연구가 이루어진후 완전공개로 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사회=80년대의 한국문학은 현실 변혁에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체제 붕괴이후 러시아의 문학은 공백상태를 맞고 있습니다.90년대에 쏟아져 나온 우리의 후일담 문학도「허탈」이라는 측면에선 비 슷한 징조가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영현=80년대 민중문학이 역사를 잇고 큰 줄기를 세운것은 사실이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유효성이나 감동성.구체성이 사라졌습니다.80년대의 자주적인 국가건설이나 통일에 대한 고뇌와 열정이 90년대에도 효과적으로 작품에 반영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김병익=80년대 문학은 여러갈래로 볼 수 있으나 이데올로기 문학이 압도적이었습니다.이러한 문학들은 현상타개의 힘으로작용하면서 독재체제를 타파하는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한마디로 80년대 문학은 무엇을 적으로 삼아야 될지를 알았고 진지함을 작품속에 담기위해 뜨거운 싸움을 했습니다.그런데 90년대의 우리문학은 진실대신 소모의 싸움을 해야할 입장입니다.아마 소모품문학이 무엇인가하는 고민이 작가를 방황하게 할 것입니다.
김원일=80년대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가 유보되던 상황에서 우회로를 통한 표현으로 어떻게 검열관의 눈을 피할 것인가를 고민한 일면도 갖고 있었지요.그러나 90년대는 그러한 정치적 제약요소가 없어진 대신 대중문화 시대가 활짝 열려 보다 광범위한 고민 앞에 서게 된것 같습니다.
김주연=80년대의 문제들은 개발독재의 산물이었습니다.아직은 경제적.사회적 모순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도 90년대 작가들이 거기 더이상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봅니다.현실을 보는 시각이 새로워지고 냉정해져야 될 것입니다.
사회=소련의 한 작가는『역사에 시달린 삶이 작가에게는 가장 풍요로운 삶』이라고 했습니다.그런 점에서 우리문학은 무궁한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집니다.노벨상이 우리의 다음 고지라면 성급한 결론이 될는지요.
김병익=작가들에겐 가혹했겠지만 역설적으로 고통이 많았기에 행복했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이런 점에서 볼때 한국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식민지.분단.전쟁을 경험한 윗세대에서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고통을 겪은 나라의 작가들이 노 벨문학상을 수상한 전례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분단경험 큰 잠재력 김원일=소외된 사람들,비극적인 삶을살고 있는 사람을 부각시키는게 문학의 역할입니다.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안겨준 교훈이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사회=상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솔제니친에게 노벨상을 줄때 주최측은『솔제니친에겐 노벨상이 중요하지 않겠지만 우리에겐 이 작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우리 문학도 세계가 찾아오는 그런 문학이 되기를 바랍니다.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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