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로 풀어본 '신승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14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이리라. 가수 신승훈(38)을 '발라드의 황제'라 부르는 것도 이런 꾸준한 인기 때문이다. 그가 2년 만에 9집 앨범 'Ninth Reply(아홉번째 응답)'를 냈다. 음반이 발매된 지난 2일 강남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나타나선 "이젠 나이가 들어 메이크업이 워낙 안 먹거든요"라며 능청을 떨더니 "콘서트에 안 오시려면 오늘 인터뷰한 것 기사 쓰지 마세요"라고 슬쩍 눈을 흘기기도 한다. 1시간반가량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유쾌하게 쏟아부었다. 데뷔한 지 14년이 된 그를 '가나다라…' 14글자로 풀어보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든 것도 그의 만만찮은 입심 덕이 컸다.

가리봉동=신승훈은 1989년 상경했다. 대전에서 노래 좀 한다는 소문을 들은 음반 관계자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가수 만들어 주겠다"던 그 관계자가 구해준 일이란 가리봉동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었다.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세 끼를 라면으로만 때우다 6개월 만에 그만 장염에 걸려 귀향길에 올랐다. 그에게도 무명시절은 쓰디썼다.

나이=내일 모레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 마흔 살이 된다. 나이에 책임을 질 때다. "가요계 선배로서 후배들을 키우고 싶어요. 난 발라드만 부르지만 곡을 줄 땐 록이 될 것입니다." 주위에선 그가 아직 미혼인 게 걱정이다. "혼자 오래 지내면 추해질 것 같아 빨리 결혼하고 싶지만…." 아직 마음에 둔 여성이 없는 걸까.

다정다감=그토록 슬픈 노래를 부르지만 평소엔 활달한 성격에 주변 사람 잘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민종.강타 등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 오죽 싹싹했으면 그 까다롭다는 기자들이 '가장 예의바른 남자 연예인 1위'로 꼽았을까.

라이브=이번 앨범은 철저히 콘서트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보사노바와 펑키, 모던록에 라틴 계열까지 여러가지 변주를 시도한 것도 다양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마니아=골수팬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의 음악은 매니어적이라기보다는 대중을 겨냥한다. "지난해 팀의 '사랑합니다', 최근엔 MC더맥스의 '사랑의 시'를 한번 듣고 곧바로 차트 1위를 할 거라고 장담했죠."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장수(長壽)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다.

바보=고등학교.대학교 동창들은 그를 속어로 '또라이(바보)'라고 부른단다. 음악만 알고 세상 물정 잘 모르기 때문이라나. "그런 말 들으면 기분 좋아요. 보통 사람과 똑같으면 어떻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겠어요. 다른 면이 있어야 대중에게 어필하죠."

사랑='미소 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등 그의 애틋한 히트곡들은 실제 경험에서 비롯됐다. 충남대 경영학과 시절 그는 캠퍼스 커플이었으나 가수가 되려고 하자 여자 쪽 집안이 반대해 헤어지고 말았다. "5집 앨범 낼 때 그녀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서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그래서 나온 노래가 '나보다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이에요."

아집=데뷔 이후 그는 단 한편의 CF도 찍지 않았다. 지금껏 제의받은 CF만 찍었어도 몇십억원은 벌었을 터인데. "무대에선 그토록 슬픈 노래를 부르고선 광고에 나와선 히죽거리며 '이 아이스크림 너무 맛있어' 한다면 꼴이 이상하잖아요." 연예인이라면 피해가기 힘든 그 흔한 스캔들 한번 없었다. 자기 관리가 결벽증에 가깝다.

자금성=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삽입된 'I Believe'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류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에서 공연했을 때 한국적인 음악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려 국악을 도입했죠. 자금성 앞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에요."

차마=신승훈의 노래가 애절한 것은 '사랑하지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정서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김소월의 시를 좋아했단다. 이번 앨범 마지막곡인 '애이불비Ⅱ(哀而不悲)' 역시 '슬프지만 울지 않는다'란 노랫말을 담고 있다.

카나리아=흉내를 잘 내는 새 카나리아처럼 그는 모창(模唱)의 달인이다. 그가 이문세.조덕배.김종서.김동률 등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양희은.이소라 등 여자 가수까지도 흉내낸다.

타성=그는 발라드만을 고집해 왔다. "변신을 안 한다고 하지만 왜 한 장르만 부르는 게 문제죠. 엘튼 존이나 빌리 조엘도 결국 한 장르만 해오지 않았나요."

파이=김건모.조성모 등 밀리언셀러 가수들이 수입 규모가 커지면서 소속사를 나와 독립을 했듯 그도 최근 '도로시 뮤직'이란 회사를 차렸다. 전문 경영인을 따로 두고, 그는 음악적인 부분에만 전념한다.

하루='아침형 인간'이라기보다는 '밤샘형 인간'에 가깝다. 오후 2시에 눈을 뜬다. 느지막이 사무실에 나와 어슬렁거리다 스튜디오에서 새벽 5시까지 작곡하고 녹음하는 게 일상이다. 집에 들어가서도 DVD 한편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곤 한다. "사무실 여직원 말고는 보는 여자가 없으니 어떻게 결혼하겠어요."

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