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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산불 확산 … 50만 명 대피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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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형 산불이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을 유럽우주국(ESA)의 엔비샛 위성이 22일 오후(현지시간) 촬영한 사진. 강한 사막바람을 타고 불길이 번지며 흰 연기가 미국 서부 해안 쪽으로 쏠린 모습이 선명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3일 이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지시했다. [ESA 제공, 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10여 곳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이틀째 일파만파로 퍼져 22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 지역 주민 50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한인 다수 거주 지역인 만큼 교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산불은 21일 새벽(현지시간) 발생해 22일에만 8개 지역에 화재가 새로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서만 약 1088㎢가 불에 탔다. 이에 따라 샌타바버라 카운티부터 멕시코 접경 지역까지 7개 카운티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이날까지 한 명이 사망하고 소방관 16명 등 41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주 당국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샌디에이고 카운티는 22일 두 곳에서 추가로 산불이 발생했다. 연기와 재 때문에 상당수 주민이 호흡 곤란 증상을 겪고 있다. 이곳에서 대피한 팻 헬싱(59)은 "불이 곳곳으로 퍼져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랜초버나도 지역에서도 화염에 휩싸인 주택들이 늘고 있다. 전소된 주택도 상당수에 이른다. 일부 한인은 새벽에 경찰의 긴급대피 방송을 듣고 안전지역으로 대피했다. 린다비스타에 있는 갈보리 장로교회에는 한인 100여 가구가 피신해 있다.

카멜밸리 지역에 거주하는 정모씨는 "아침에 산불 상황을 보고 가족과 함께 무조건 집에서 나왔다"면서 "4년 전 산불이 났을 때도 대피한 적이 있는데 또 이 같은 상황을 겪게 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4년 전인 2003년 10월 21일 방화와 강풍 때문에 초대형 산불이 10일간 계속돼 22명의 사망자를 내고 주택 3000여 채가 전소됐다.

강제대피령이 내려진 어바인 지역 한인들도 친척집이나 모텔 등으로 대피했다. 웨스트 어바인에 사는 정희경(37)씨는 "어제부터 연기가 자욱하고 타는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와 아기가 밤새 보챘다"고 말했다.

샌타클라리타 지역의 스티븐슨 랜치.발렌시아에서도 22일 산불이 발생해 이 지역 한인들이 산불 진행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LA에서 근무하는 이 지역 한인 상당수는 직장에서 조기 퇴근했다. 한인타운에서 일하는 라이언 장(43)은 "이웃 주민들이 대피한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듣고 회사에서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며 "애들 학교까지 휴교령이 떨어져 가족 모두 LA 친척집에서 머무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발렌시아에 사는 김승관(49)씨는 "회사를 조퇴하고 집에 가 짐을 꾸렸다"며 "동네 한인 대부분이 같은 처지"라고 전했다.

말리부에 사는 클라라 심도 "다른 곳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한테 연락을 받고 집에 못 가고 LA로 대피했다"며 "이번 화재로 전신주가 무너지면서 전기가 끊겨 화재가 진압돼도 당분간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패퍼다인 대학과 토팽가 지역 초등학교에는 휴교조치가 내려졌으며, 5개 적십자사 대피소는 이재민으로 넘쳐나고 있다. 미 프로풋볼(NFL) 샌디에이고 차저스의 홈구장인 퀠컴 스타디움에만 1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진화작업은 강한 바람과 이상 고온.건조한 날씨 때문에 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불길은 계절성 강풍인 '샌타 애나 바람'의 영향으로 더 거세지고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22일 "지금 캘리포니아는 비극적인 순간"이라며 주 방위군 1500명 투입을 결정했다. 국방부도 불길을 잡기 위해 대당 3000갤런(1만3000L)의 물을 실을 수 있는 육군 소속 C-130 비행기 6대를 보냈다. 일부 산불은 강풍 때문에 전선이 끊기며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일현 기자, 미주지사 종합

◆샌타 애나 바람(Santa AnaWinds)=동쪽의 시에라 네바다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로키산맥을 넘어오면서 만들어지는 고온건조한 높새바람이다. 가을과 초겨울에 주로 불며, 이때문에 캘리포니아 남부의 가을 날씨는 한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뜨겁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자주 대형 화재를 발생시킨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 바람의 속도가 시속 97~160km에 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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