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카스트로와 美 역대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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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쿠바 국가원수 피델 카스트로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서 빌 클린턴에 이르는 9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지만 美대통령들은 턱밑의 이 공산주의자와 매번 화해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스트로가 지난 59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 이후 가장 먼저 발생한 사건은 쿠바인들이 美플로리다州로대량 탈출함으로써 이州의 인구지도가 변했으며 마이애미가 쿠바계미국인들의 근거지가 됐다는 것이었다.냉전이 최 고조에 달하던 시기에 미국의 코앞에서 강력한 공산정권이 출범했다는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의 후임인 존 케네디대통령은 61년4월 피그만 침공당시 망명 쿠바인들을 지원,카스트로 축출을 도모하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62년10월에는 소련이 核미사일을 쿠바에 보내면서 위기가 고조됐다.케네디 대통령은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서기장에게 압력을넣어 核미사일을 되돌리는데 성공했지만 이 사건은 美-蘇가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는 끔찍한 경험을 남겼다 .
지난 67년 린든 존슨 美대통령 당시 카스트로는 혁명동지 체게바라를 볼리비아로 보내 폭동을 주도하도록 했다.10년 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쿠바가 앙골라.에티오피아에서 벌이는 군사활동을 비난했으며 로널드 레이건은 카스트로가 니카라 과 산디니스타정부를 지원하고 있을 때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러는 동안 쿠바 탈출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69년부터 74년사이 쿠바인 15만명 이상이 미국으로 탈출했으며 지난 80년 한해에는 13만3천8백25명이 미국땅을 밟았다.카스트로는죄수들과 정신질환자들의 국외탈출을 조장함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적절히 활용했다.
한편 마이애미의 쿠바계 수는 전체의 29%인 50여만명에 달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로튼 차일스 플로리다州지사(民主)가 부시 前대통령의 아들 제브 부시(共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재의 州지사 선거 에서 이민문제는 최대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91년 대선당시 클린턴은 플로리다州에서 패한 바 있어 플로리다는 클린턴이 재선되는데 있어 중요한 지역중의 하나이다.
[워싱턴 AFP=聯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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