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PL 삼국지'-이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 돌풍 … 제조업체 셈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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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이마트가 자체 브랜드(PL)상품을 대거 출시한 뒤 맞은 첫 주말. 소비자들의 반응은 일단 뜨거웠다. 새 PL상품 출시 첫날인 18일부터 일요일인 21일까지 이마트 86개 직영 전 점포에서는 대부분의 PL상품이 일반 제조업체 브랜드를 압도했다. 이마트태양초고추장(3㎏ 9900원)은 7455개가 팔려 순창찰고추장(2.8㎏ 1만1900원) 판매량(3389개)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마트콜라(1.5L 790원, 2만769개 판매)도 코카콜라(1.8L 1630원, 8777개 판매)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마트 측은 “일단 출발이 좋다”며 밝은 표정이다. 이런 이마트 분위기와 달리 제조업체들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PL상품 확대에 따른 복잡한 ‘생존 방정식’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후발 업체들, “기회가 될 수 있다”=이마트에 태양초고추장과 쌈장을 PL제품으로 납품하는 신송식품은 80%이던 공장 가동률을 최근 거의 100%로 높였다. 회사 관계자는 “납품가가 싸긴 하지만, 대량 납품에 따른 이익도 꽤 크다”고 말했다.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공장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원재료 구매 때도 값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콜라를 납품하는 해태음료도 콜라·사이다를 합쳐 30억원에 불과한 연 매출이 이마트 납품을 계기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품의 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워낙 외국 콜라 브랜드에 눌려 기를 못 펴 왔는데, 이마트 PL 참여가 우리에겐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PL제품을 고를 때 제조원을 꼭 확인하는 습관 때문에 이들 후발 업체는 상당한 광고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여유 있는 최상위 브랜드들=브랜드 파워가 탄탄한 최상위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를 보였다.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판단하는 식품 업체들은 느긋했다. 신라면과 맥심커피는 이마트의 PL상품에 비해 각각 2.5배, 8배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농심 관계자는 “식품은 워낙 부가가치가 낮아서 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며 “입맛이 쉽게 변하지 않는 만큼 약간의 가격 차이 때문에 판매량이 확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측도 즉석 밥 ‘햇반’이 이마트 PL상품(‘왕후의 밥’)에 비해 3분의 1가량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한두 달쯤 지나면 매출이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중위 업체들=문제는 브랜드 파워가 모호한 중위 업체다. PL이 확대되면 간신히 키워놓은 브랜드 입지가 좁아지고, 그렇다고 PL 참여를 거부하면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석 밥을 이마트에 납품한 동원F&B 관계자는 “판매가 늘어 당장은 좋지만, 우리가 올해 출시한 ‘쎈쿡’ 브랜드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에서 PL 참여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곳도 많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우리 제품 대부분은 PL 참여를 거부하고 있지만, 초코파이같이 뒤처지는 제품은 PL 참여를 통해 경쟁사를 견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상·임미진 기자

◆PL(Private Label)상품=유통업체가 제조업체 브랜드 대신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상품. 유통과정을 단순화하고 마진을 줄여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PB(Private Brand)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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